20년 사제의 정, 가야금 가락에 실어…

  • 입력 2008년 5월 14일 02시 59분


가야금부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백제중 이수희 교사(오른쪽). 사진 제공 한국교육신문
가야금부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백제중 이수희 교사(오른쪽). 사진 제공 한국교육신문
백제중 이수희 교사 1989년 부임때부터 국악 교육

암투병 중에도 나이든 제자들과 가야금연주단 활동

“나이 들어가는 제자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입니다. 가야금을 배워 취직도 제대로 못하는 제자들에게 꼭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15일 스승의 날을 앞둔 가운데 암 투병을 하면서 가야금으로 사제의 정을 잇고 있는 충남 부여군 백제중 이수희(42) 교사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농촌 지역의 작은 사립 중학교에서 20년간 가야금부를 지도한 그는 제자들과 함께 지난해 11월 ‘백제가야금연주단’을 창단했다.

이 교사는 2006년 유방암 선고를 받았고 현재도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은사의 투병 소식을 접한 졸업생 23명이 연주단 활동이 투병에 도움이 된다며 창단을 권유한 것.

연주단 막내로 전북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순복(20) 씨는 “가야금을 들고 부여까지 와서 연습에 참여하는 것이 힘들지만 선생님 생각에 힘을 낸다”며 “우리들의 가야금 소리가 선생님에게 좋은 ‘약’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89년 봄 백제중에 음악 교사로 부임한 이 교사는 가야금을 메고 왔다.

그는 아이들에게 국악을 가르치기 위해 가야금부에 애정을 쏟았지만 학부모들은 학업에 지장을 준다며 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야금을 배운 학생들이 집중력도 높아지고 학교 성적도 오르자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2008년 가야금부는 충남교육청에서 별도 예산 지원을 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 교사의 제자들은 학창 시절부터 ‘우륵 문화제’ 등 전국 규모 가야금 대회에서 여러 차례 대상을 차지하는 등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가야금부 출신 150여 명 중 40여 명이 전통 음악을 전공했다.

이 교사는 전통을 잇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대견하지만 안타깝다고 했다.

“하루는 한 ‘녀석’이 연습에는 안 오고 돈이 없어 못 온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어요. 별수 있나요, 인터넷뱅킹으로 송금해 주는 수밖에요.”

이 교사는 또 “앞으로 다문화 가정을 위해 동남아 국가의 전통 음악을 가야금으로 연주하고 해외 공연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근 그의 동료 교사인 황환택(50) 씨는 이명박 대통령 앞으로 편지 한 통을 썼다. 이 대통령이 이들의 연주를 꼭 한 번 봐야 한다는 것. 황 교사는 “연주가 아닌 공교육의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며 “이 선생님과 아이들이야말로 공교육이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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