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씨 “날 만만하게 보면 휘슬 붑니다”

  • 입력 2006년 7월 1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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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농구 심판 이현정(26·사진) 씨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고 있다.

국내 남자프로농구 사상 첫 여성 심판이 되기 위해 지원한 것.

그는 지난달 실시된 한국농구연맹(KBL) 심판 공채에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지원서를 낸 뒤 서류심사를 통과한 9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다. 이달 초부터는 지원자 중 홍일점으로 심판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번 주 실기 및 체력 테스트, 필기시험을 잇달아 치른다.

“여자라고 특별 대접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똑같이 경쟁해서 합격하고 싶어요.”

이 씨는 신일고와 성균관대에서 농구선수를 한 아버지 이덕희(53) 씨의 영향으로 서울 금천구 백산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농구를 시작했다. 동일여중과 동일여상을 졸업한 그는 174cm의 포워드로 활약하며 1998년 실업팀 한국화장품에 입단했으나 3개월 만에 팀이 해체되면서 신세계로 옮겼지만 그해 말 갑자기 심장 부정맥 증세를 보여 은퇴했다.

농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대한농구협회 심판 교실을 거쳐 1급 자격증까지 딴 그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해 이번에 도전장을 내게 됐다.

올해 1월 암 투병 끝에 저세상으로 간 어머니가 남긴 “좋은 심판이 돼라”는 유언의 영향이 컸다. 그래서 여자 심판이 많은 여자프로농구보다는 남자프로농구에서 ‘여성 1호 포청천’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힘겨운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먼 곳에서 응원할 어머니를 떠올리며 힘을 냈다. 힘든 체력 시험에 대비해 일부러 동네 헬스클럽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근력을 키우기도 했다.

이 씨는 KBL 심판 교육 과정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판정과 농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호평을 받아 이달 말 합격자 발표에서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그를 지켜본 KBL 소속 기존 심판들은 “심판 시그널(수신호)과 경기 이해력이 뛰어나다. 체력도 뒤지지 않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1997년 2명의 여자 심판이 처음으로 임용된 적이 있다.

아버지와 자신을 비롯한 세 남매가 모두 선수로 뛴 농구 가족인 이 씨는 “심판의 중요한 덕목은 주관과 자신감인 것 같다. 여자가 아닌 한 명의 심판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장차 챔피언결정전 같은 큰 경기에서 휘슬을 불게 되는 것. 이 씨는 그 순간만 떠올리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랜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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