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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16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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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최근 펴낸 신작 ‘길’의 주인공 남매도 작가 조씨처럼 먼 길을 떠난다. 아버지를 잃고 철거 직전의 산동네에 사는 장애소년 승우가 어린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여로가 소설 내용. 서울에서 충남 보령시→전북 군산시→전남 여수시→부산에 이르기까지 파란 많은 길이 남매 앞에 펼쳐진다.
금강이 차로 달려서 30분 거리라는 조씨의 집필실 주변은 주위에 낮은 둔덕들이 둘러선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동안은 험산과 호숫가 등을 옮겨 다니며 풍경에 취해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이곳 풍경은 평범하기 짝이 없지만 그게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조씨는 “글쓰기도 탈고를 향한 하나의 여로”라며 “‘가시고기’(2000년)나 ‘등대지기’(2001년) 등 전작과 달리 나와 닮은 점이 없는 소년을 다뤄야 했기 때문에 이번 여행길에는 진통이 컸다”고 말했다.
‘길’의 주인공인 승우는 왼쪽다리가 짧아 몸이 늘 11시 방향으로 기울어 있는 장애소년. 그는 불치병에 걸린 것도 모른 채 “집 나간 엄마를 한번 보는 게 소원”이라는 여동생, 폭력조직에서 일하다 나온 삼촌 ‘날치’, 남의 차를 훔쳐 달아나는 ‘춘자 누나’ 등과 길을 떠나며 세상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절절하게 체험한다.
조씨에게도 ‘길’을 탈고하기까지 동반자가 있었다. 그와 함께 작업실을 쓰는 중앙대 문예창작과 동창생 이정규(49) 김민기씨(46)가 든든한 조언자였던 것. 2001년 여름 줄거리를 짤 때도, 지난해 10월 1차 탈고 후에도 세 사람은 난상토론을 벌였다. 조씨의 ‘길동무’들은 “날치가 그렇게 악해 보이지 않는다”(김민기) “그래서 후반부 날치의 변화에 감동이 덜하다”(이정규) 등 작품이 가야할 방향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조씨는 이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소설 종반부에 ‘이야기의 근간을 흔드는 반전’을 새로 짜 넣기도 했다.
그는 “어린 남매의 길고도 어려운 여행을 통해 어떤 사람이든 갖고 있는 순수하고 싶은 꿈, 선(善)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곳 응암리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고여 있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또 길을 떠날 생각입니다.” 작가는 봄기운이 다가오는 둔덕 너머를 바라봤다.
연기=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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