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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2월 19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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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졸업장 수여는 최씨의 공로를 인정한 연세대 동문회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1945년 연희전문(연세대 전신) 정치학과에 입학한 최씨는 이듬해 문과로 전과했지만 47년 12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됐다는 죄목으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48년 3월 장기결석으로 제적됐다.
28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난 최씨는 연희전문 재학 중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이 이끌던 한국독립당 산하 대한학생연맹 위원장을 지냈다. 49년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노기남(盧基南) 대주교의 비서로 있으면서 장면(張勉) 박사와도 친분을 맺었지만 자유당 정권의 미움을 사 57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 뒤 5년간 일본 국회도서관 아시아 자료실에서 연구할 기회를 얻게 돼 한국 관계 자료를 공부했습니다.”
이후 그는 일본 아시아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인 학자 및 언론계 인사들과 한일관계사를 공동 연구하기도 했다. 일본 정치인들과도 교분을 맺고 한일 양국 교류에 힘썼다.
69년부터는 자신이 일본에서 만든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으로서 안중근(安重根) 의사 전기와 옥중수기, 이봉창(李奉昌) 의사 옥중수기, 상하이임시정부 요인 58명의 명단과 직함 등 귀중한 독립운동 사료를 발굴, 연구해 왔다.
그의 노력으로 안 의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된 일본 학자 및 언론인 20여명과 96년 ‘일본 안중근연구회’를 만들기도 했다.
88년 영구 귀국한 최씨는 국제한국연구원을 개설해 원장직을 맡아오다 지난해 물러났으며 요즘에는 안중근 의사 평전 준비와 14세기 서양 지도에 나타난 한반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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