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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2월 10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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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을 함께 해온 부인과 사별한 허버트 스퍼 할아버지(85)가 밀레드 보드 할머니(73) 를 만난 것은 작년 10월. 노인성 치매를 심하게 앓던 부인의 곁을 지키기 위해 함께 뉴욕의 한 양로원에 들어왔던 스퍼 할아버지가 부인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실의에 잠겨 있을 때였다. 별다른 희망없이 의무적으로 매주 5번 있는 재활치료 프로그램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옆자리에 우연히 앉게 된 보드 할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슬픔에 잠겨 점차 마음을 걸어 잠그던 스퍼 할아버지가 이례적으로 먼저 말을 건넨 이유는 바로 할머니의 검고 슬픈 눈빛 때문이었다는 것.
“너무나 슬퍼 보였어요. 그리고 그 슬프고 검은 눈에 이상하게 맘이 끌렸죠.”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해 평생 독신이었던 보드 할머니는 당시 심한 고혈압과 심장병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금융회사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근무하며 활동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온 그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던 것. 그러나 할아버지를 만난 뒤부터는 다시 살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다.
“내 눈이 아름답다고 그가 말했는데 이 나이가 돼서도 설레더군요(웃음).”
이제 서로의 휠체어를 밀고 당겨주며 항상 붙어 다니는 연인이 된 두 사람.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찾아온 인연과 기회를 망설이며 포기하기보다는 함께 남은 삶을 정리해 나가고 싶습니다.”
밸런타인데이 전 날인 13일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두 사람의 다짐이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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