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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 그사람]신문선/축구해설 업그레이드 도운 '허PD'

입력 2003-01-05 18:07업데이트 2009-10-11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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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차면 입이 바쁜 해설’을 한 지도 벌써 18년째로 접어든다. 결코 짧지 않은 마이크 인생을 돌아보면 ‘충돌’과 ‘도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90분간 죽어라 떠들고 나면 해설료는 고작 몇천원이던 시절, 나는 늘 불만이 많았다.

야구해설자는 방송사의 ‘전속’으로 연봉 몇 천만원을 받을 때 축구해설자들은 고작 교통비에 해당하는 사례비를 받고 중계방송을 해야 했다.

30대 초반의 새파란 나이의 해설자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스포츠 심리와 역학, 생리, 철학 등 스포츠과학을 축구중계에 대입시키며 따발총을 막 쏴댔던 해설은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 같은 해설에 정작 방송을 같이하던 캐스터와 방송사 간부들은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이때 나는 “캐스터가 북 치고 장구 치면 그저 네, 네 하는 것이 해설자인가. 또 이기면 잘 하고 지면 못 한다고 꼬집는 해설은 못 한다”며 맞선 것이 수 차례였다.

이럴 때마다 나를 감싸주고 격려해 준 사람이 허연회 PD였다. 방송사의 생리상 PD는 자신의 힘(?)을 내세워 해설자와 캐스터를 통제하려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허 PD는 늘 내 편이 돼 줬다.

“미안하다. 열악한 처우는 기회가 되면 개선시켜 주겠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해설로 인정받는 것이 지름길이야.” 그는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각종 축구경기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허 PD와 함께 중계방송했다. 한마디로 최고로 인정받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중계가 끝나면 방송에 대해 밤을 새우며 토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만약 내 고집을 앞세운 해설에 대한 이해와 독려를 아끼지 않은 허 PD가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의 축구해설가 신문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선(축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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