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세상에 웃음 안기고… 코미디황제 이주일 가다

  • 입력 2002년 8월 27일 15시 41분


생전 KBS ‘빅쇼’에 출연해 파안대소하고 있는 이주일씨.

생전 KBS ‘빅쇼’에 출연해 파안대소하고 있는 이주일씨.

“불가능하다고 여긴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이 이제는 가능성 있는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습니까. 축구는 인생과 같습니다. 골문만 보고 달려가다간 금세 우리편을 놓치고 공도 뺏기죠. 가끔씩 옆을 쳐다보면서 백 패스를 할 줄 아는 여유도 있어야 합니다.”

27일 세상을 떠난 고인은 5월3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을 지켜본 뒤 이렇게 말했다.

‘코미디 황제’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종종 가쁜 숨을 몰아쉬었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을 공격한 암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그는 폐암에 걸려 힘겹게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적극적인 금연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한번의 롱패스로 손쉽게 ‘골’을 넣은 벼락스타가 아니었다. 20여년의 무명 생활로 가난과 배고픔의 의미를 아는 연예인이었다. 예기치 않았던 인생의 ‘백 패스’와 ‘패스 미스’도 있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린 1980년대,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TV 출연이 금지됐는가 하면 국회 진출에 대한 외부의 따가운 눈총과 방황, 외아들 창원씨의 죽음 등 인생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고인은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웃음으로 서민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대머리에 낮은 코, 작은 눈 등 못생긴 얼굴에 뭔가 모자란 듯 보이는 굼뜬 행동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SBS ‘이주일의 코미디 쇼’를 끝으로 최근에는 방송 활동이 뜸했지만 그에 대한 서민의 사랑은 여전했다.

지난해 10월 그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경기 성남시 분당의 집과 고양시 일산의 국립 암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집에는 “후원금을 내고 싶다” “좋은 생약이 있다”는 내용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부인 제화자씨가 하루 수백통씩 걸려오는 팬들의 전화로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다.

고인은 이 같은 격려에 힘입어 “‘갈 때 가더라도’ 한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모습을 봐야겠다”며 강한 투병의지를 보이기도 했다.고인과 가까웠던 한 지인은 “이주일은 자리에 앉기만 하면 술을 찾고 줄담배를 피워 건강이 악화됐지만 한국인들이 한명의 희극인에 대해 큰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고인은 1940년 10월24일 강원 고성군 거진면에서 태어났다. 6·25전쟁으로 가세가 기운 그는 1960년대 초반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유랑극단에 들어가 막일을 도맡았다. 1969년 베트남 파견 장병 위문공연단에서 무대에 올랐고 가끔 남진 나훈아 쇼의 사회를 보기도 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주일이라는 이름 석 자가 알려진 것은 1977년 전북 이리역 폭발사고 때 가수 하춘화를 극장에서 업고 나온 주인공이 되면서부터. 서울 성동구 금호동 판잣집에서 생활하던 그는 1980년 TBC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코미디언 이상해와 함께 출연해 ‘수지 큐’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드는 오리춤과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못생긴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고 김경태 PD와 함께 연출을 맡았고 1996년 SBS ‘이주일의 코미디쇼’를 기획한 SBS 이남기 제작본부장은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출연한 지 한 달도 안돼 최단 기간에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라며 “늦깎이 스타가 되기 전까지 고생을 많이 해 인생에 대한 생각이 깊던 연예인이었다”고 회고했다.

92년 ‘코미디 황제’의 정계 진출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경기 구리시에 출마해 당선된 것. 의정 활동을 마친 뒤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간다”는 뼈있는 한마디는 또다시 세간의 화제가 됐다.

가수 조영남은 1981년 서울 중구 북창동의 극장식당 ‘초원의 집’에서 고인과 함께 출연하면서 최근까지 절친하게 지냈던 연예인. 그는 “이주일형은 웃음으로 국민에게 위안을 주었던 큰 그릇이었지만 본인은 최악의 슬픔을 갖고 있었다”며 “옆에서 보기에 그의 삶은 7대 독자인 아들이 숨지고 정치인으로 방황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그의 병실을 지켜온 후배 코미디언 이용식은 “지난달 31일 주일이형이 평소 좋아하던 ‘영양탕’을 먹고 싶다고 해 음식을 먹으러 가던 도중에 의식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게 끝이었다”며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식을 함께 보자며 적금을 들기로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방송가에서는 “고인은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이제 영원히 웃을 수 있는 곳에서 축구와 웃음을 위한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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