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예수원’ 설립자 대천덕신부

  • 입력 2002년 8월 6일 23시 15분


“노동은 기도요, 기도는 노동이다.”

6일 타계한 대천덕(戴天德) 성공회 신부가 평소 강조해온 말이다.

1965년 그가 강원 태백시 산골에 설립한 기독교 공동체인 ‘예수원’은 인간의 영성 구현과 성서적 경제관을 실천해온 삶의 터전이었다. 그가 이 공동체의 설립을 준비할 당시에 동참한 이는 부인 현재인(玄在仁)씨와 6명의 건설노동자, 6명의 농부뿐이었다. 하지만 예수원은 고인의 헌신에 힘입어 성경에 따른 토지 문제 등을 연구하는 교육기관이자 교파를 초월해 많은 기독교인의 영성 수련장이 됐다. 이곳에서는 현재 80여명이 생활하고 있고 매년 1만여 신자들이 찾아와 기도와 위안을 찾고 있다.

교계에서는 “예수원은 일종의 ‘신학 실험실’이다. 수많은 기독교인이 예수원에서 노동과 기도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기쁨을 얻었다”고 밝혔다.

고인의 집안은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조부는 무디성경학교의 설립자이자 저명한 성령운동가인 토리 목사이며 아버지는 중국 선교사로 사역하다 6·25전쟁 뒤 대전에 정착, 장애인과 고아의 재활 사업에 힘써왔다.

고인은 화가 출신으로 54년간 해로해온 아내 현씨와 단 한 차례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팔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내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며 새로운 계획을 세웠던 그는 ‘제2의 고향’이 된 한국 교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고인은 5월 예수원 창립 37주년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끝내 회생하지 못했다. 저서로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 ‘개척자의 길’ ‘예수원 이야기’ 등을 남겼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