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서 구조된 윤찬웅군-택시에 끌려가다 살아난 곽모씨

  • 입력 2002년 8월 4일 19시 27분


윤찬웅군(가운데) - 권재현기자
윤찬웅군(가운데) - 권재현기자
숱한 뉴스 속의 주인공들. 어떤 이들은 집중조명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건 자체에 가려 금방 잊혀지기도 한다. ‘뉴스와 사람’은 그렇게 뉴스 속에 묻혀버린 주인공들을 발굴해 그들의 남다른 경험담과 생생한 후속사연을 좇아간다. 그 첫 번째로 지난달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나란히 화제가 됐던 두 사람의 일담을 들어본다. 남들은 ‘슈퍼베이비’니 ‘슈퍼우먼’이니 하며 ‘천운(天運)’이라고들 했지만 뉴스가 나간 뒤 만나본 그들의 표정에는 명암이 엇갈려 있었다.

▼맨홀서 47시간만에 구조된 생후34개월 윤찬웅군▼

지난달 11일 맨홀에 빠졌다가 47시간 만에 건강하게 구조돼 ‘슈퍼베이비’란 별명을 얻게 된 생후 34개월의 윤찬웅군(사진·본보 7월12일자 A31면 보도).

윤군은 좁은 통로를 기어서 빠져 나오려다 팔다리에 생채기를 입고 눈 코 입만 간신히 물 밖으로 내민 채 물 속에 잠겨있으면서 저체온증으로 고생했지만 20일 건강한 몸으로 퇴원했다.

경기 동두천시와 인접한 양주군 은현면 봉암리 집에서 만난 윤군은 또래와 비슷한 체중 14㎏의 평범한 아이였다.

다만 지금은 어두운 곳을 싫어하고 들고양이 울음소리에 시달린 탓인지 “고양이가 울어”라고 잠꼬대를 한다고 했다.

“어린 녀석이 탈수현상을 일으키면서도 다행히 오염된 물을 아주 조금만 마셔 다른 큰 탈은 없다고 하더군요.”

부인과 함께 떡집을 하는 아버지 윤진국씨(33)는 어린 아들이 용케 터득한 생존 비결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남다른 점이 있다면 끼니마다 밥 한 공기씩 꼬박꼬박 먹고 이틀에 한번씩 고기를 찾아 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다는 거예요.”

10분 남짓 한눈을 팔았다가 결혼 4년 만에 어렵사리 얻은 외동아들을 잃을 뻔했던 어머니 김영실씨(30)는 22일 동네 떡잔치를 열어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천운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걱정해주신 만큼 건강히 키우겠습니다.”

▼택시에 2.5㎞ 끌려가다 살아난 20代 여성 곽모씨▼

지난달 22일 택시 밑에 깔린 채 2.5㎞를 끌려가고도 살아남은 곽모씨(27·여·회사원·본보 7월24일자 A31면 보도). 하지만 그 자신과 가족에겐 ‘천운’이라기보다는 다시 기억하기 싫은 악몽일 뿐이다.

현재 고려대 구로병원에 입원 중인 그의 창가 침대 주변에는 선풍기가 3대나 돌아가고 있다.

도로바닥에 끌려가며 입은 등의 상처가 심한데다 마찰열로 화상까지 입고 엎드려 있어야 할 상황이지만 골절된 골반을 고정시키기 위해 바로 누워있다 보니 등쪽 상처가 악화돼 고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치의는 “골반이 고정되는 데만 3개월은 걸리고 오른쪽 옆구리, 둔부, 가슴 등에 피부이식수술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최소 6개월 이상 입원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고 당시 충격 때문인지 사고에 대한 그의 기억은 매우 단편적이다. 그가 주변 친지들에게 간헐적으로 전한 말을 종합해보면 그 날 밤 서울 여의도에서 친구들과 칼국수를 먹고 헤어져 집으로 가다 어느 순간 자신이 택시 밑에 깔린 채 끌려가고 있었다는 것.

“한참 끌려가다 힘이 빠져 오른쪽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고 두개골이 바닥에 갈리는 느낌이 들면서 ‘이젠 진짜 죽는구나’하고 포기하려 할 때 택시가 횡단보도 앞에 섰고 사람들의 다리를 보고는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곽씨의 언니(30·주부)가 전하는 그의 기억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곽씨 가족사의 비극이다.

6남매 중 오빠 둘은 모두 산업재해로 장애인이 됐고 병간호 중인 언니도 수 년 전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여 7개월이나 입원했다. 6남매 중 4명이 대형사고를 겪은 것.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아시면 얼마나 놀라고 마음 상할까 하는 생각에 아직까지 비밀로 하고 있어요. 남들은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저희 형제는 기가 막힐 뿐이에요.”

그 말에 기자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고통스러워하는 곽씨에게 차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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