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익원 前지검장 회고록 「따뜻한 날의 오후」 화제

  • 입력 1999년 4월 20일 19시 29분


‘선비검사’로 알려졌던 서익원(徐翼源·59) 전수원지검장이 생사를 넘나드는 병마와 싸우면서 30년 검사생활을 정리하는 회고록 ‘따뜻한 날의 오후’를 펴내 감동을 전하고 있다. 그는 2년 전 발병했던 암이 재발해 고통을 겪고 있다.

서 전검사장은 68년 검사로 임관돼 대검 형사부장과 수원지검장을 지내고 93년 퇴직했다. 그는 87년 서울지검 차장검사 시절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 수사를 지휘해 진실을 밝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서 전검사장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법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직덕(職德)’이라는 글에서 그는 “검사라는 직업 때문에 주위에서 부탁과 기대가 많았지만 대부분 못본체 하고 넘겼다”며 “평생 법으로 밥을 먹고 살았지만 법 없이도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법이 우습다’는 제목의 글에서도 그는 법에 대한 회의를 나타냈다. 그는 “검찰의 투명하지 못한 수사와 정권의 사면권 남용 등으로 서민들만 법을 겁낼 뿐 높은 사람들은 법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것은 법조인의 덕목이지만 원칙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큰 것을 잃는 수도 있어 고민해왔다”고 회고했다.

서 전검사장은 ‘몰락한 독재자를 끝까지 비호하는 추종자’ ‘부패한 상사를 감싸며 희생하는 부하직원’ 등을 예로 들며 ‘의리’라는 것이 옳고 그름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의 오랜 친구인 정성진(鄭城鎭·국민대 교수)전대검중수부장은 “회고록이 상투적이지 않으면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 동희씨는 “다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횡포에 맞서 소수와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아버지의 평생 관심사였다”며 “병마와 사투(死鬪)를 벌이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아버지께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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