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제정구의원 추모행렬]도시빈민과 함께한 가시밭길 삶

  • 입력 1999년 2월 10일 18시 59분


10일 한나라당 제정구(諸廷坵)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 시흥시 신천연합병원 영안실에는 ‘인격있는 빈민운동가, 양심적인 정치인’을 기리는 추모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그가 빈민운동가 시절 건설한 ‘복음자리 마을’사람들 1천여명은 9일 밤부터 차례로 빈소를 찾아 수십명단위로 추모기도를 올렸다.

김수환(金壽煥)추기경과 한나라당 조순(趙淳)명예총재 이부영(李富榮) 김문수(金文洙)의원 조완규(趙完圭)전서울대총장 등 각계인사 및 그와 빈민운동을 함께했던 정일우신부 김진홍목사 등 재야운동가들도 속속 빈소를 찾았다.

김추기경은 “그는 도시빈민의 벗이요 형제였던 사람으로 어려운 시대 당국의 요주의와 감시하에서 옥살이 등 고통과 박해를 받으며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가 돼 살아온 사람”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고 제의원은 44년 경남 고성 태생으로 66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며 74년 민청학련사건 등으로 두차례 투옥경험이 있는 ‘운동권’이었다. 그는 72년 청계천 판자촌에서 야학교사로 일하면서 소외계층과 함께하는 삶에 관심을 가졌고 77년 판자촌에서 만난 정일우신부 및 서울 양평동 철거민들과 함께 지금의 시흥시에 ‘복음자리 마을’을 세웠다. 시흥시 일대 달동네에 그가 직접 찍어 만든 블록이 들어가지 않은 집이 없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일화.

80년대 초에는 천주교 도시빈민사목협의회를 결성해 목동 상계동 등 강제철거대상 빈민촌에서 빈민운동을 주도해 ‘철거민의 대부’로 불렸고 이 공로로 86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12일 오전6시 발인과 오전8시 김추기경이 집전하는 명동성당 영결미사를 거쳐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문 철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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