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인천국제마라톤’에서 김완기 삼척시청 감독이 1위로 결승선에 들어온 이수민 선수를 부축하는 장면. 뉴스1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11월 23일 열린 인천국제마라톤에서 불거진 삼척시청 감독의 소속 선수 신체 접촉 논란은 한국 스포츠계의 민낯을 드러냈다.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여성 선수가 부축하는 남성 감독을 뿌리치는 장면은 많은 이에게 의문을 남겼다. 해당 영상만으로 사실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대중의 추측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 자체가 중요하다. 그런 연상이 스포츠계의 지도 방식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불편한’ 장면과 그로 인한 논란은 스포츠계에 남아 있는 구태적 지도 문화와 관련 있어 보인다. 당사자인 이수민 선수는 이 일에 대해 직접 “문제의 본질은 성적 의도 여부가 아니라 골인 직후 강한 신체 접촉으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는 점”이라면서 “통증과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독의) 행동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스승과 제자’로 대표되는 훈련 시스템은 그동안 많은 성과를 냈지만,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대칭적 위계 구조와 지도자의 절대 권력, 선수의 침묵을 전제로 한 훈련 방식은 폭언·폭력, 강압적 훈련, 성적 보상 체계 등 다양한 문제를 낳았다. 선수들은 “성적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명분 아래 방치되기 일쑤였고, 침묵과 순응을 요구받았다. 이 같은 구조가 사실관계를 따지기도 전에 대중 사이 선수에 대한 지도자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의심하는 배경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국제 스포츠 환경은 어떨까. 체벌과 폭력이 만연했던 일본 스포츠계는 2010년대 유도계 폭력 사건을 계기로 선수의 ‘자기 결정권’ 존중을 핵심 가치로 하는 지도 철학을 도입했다. 일본육상경기연맹(JAAF)은 ‘선수 퍼스트’ 정책을 도입하고, 훈련 원칙을 ‘강도가 아닌 이해’로 전환했다. 고강도 반복 훈련이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체력 관리, 심리 안정, 회복 중심 시스템이 중심이 된 것이다. 지도자는 기술 코치뿐 아니라 멘털 코치, 데이터 분석가, 커뮤니케이터라는 역할을 수행한다. 유럽의 엘리트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오래전부터 선수 주도형 훈련을 도입했다. 선수의 감정 표현과 상호 피드백도 공식 훈련 과정에 포함시켰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면 ‘나쁜 지도자’와 ‘불행한 선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스포츠는 강압 대신 설득, 비명 대신 대화, 감정의 억압 대신 심리 관리, 무한 반복 대신 데이터 기반 훈련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도자는 팀 문화의 설계자이자, 선수 삶을 존중하는 조력자여야 한다. 선수들도 자신의 신체, 정신, 훈련에 대해 발언하고 선택할 권리를 구조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며칠 전 프로축구 K리그1(1부 리그) 울산HD의 정승현 선수가 신태용 전 감독의 선수단 폭행 및 위압적 관리 방식을 폭로하기도 했다. 불편한 장면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문제는 개인인가, 아니면 시스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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