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로 투자금 2000배 불린 일당들
사업자 선정 기준, 수익 배분도 마음대로
남욱 재산 동결 해제 요구 ‘적반하장’
이럴 줄 알면서 ‘항소 포기’했나 답해야
천광암 논설주간
대장동 개발 비리에 대한 1심 판결문은 740쪽에 이른다. 복잡한 법률적 쟁점도 많다. 피고인 5명에 대해 적용된 죄목이 10가지가 넘고 일부는 유죄, 일부는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그러다 보니 ‘항소 포기가 옳다느니, 잘못됐다느니’ 상반된 주장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엽적인 법리 논란’은 일단 접어두고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 관계에 주목을 하면, 대장동 사건의 본질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하다. 김만배 남욱 정영학 등이 유동규 등 성남시 수뇌부를 구워삶아 사전 짬짜미로 사업자 지위를 확보한 뒤, 수익배분 구조를 일방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조로 설계해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을 독식하다시피 한 전대미문의 부패 범죄라는 사실이다.
먼저 수익률부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검찰이 특정한 대장동 일당의 범죄 수익은 김만배 6111억 원, 남욱 1010억 원, 정영학 646억 원 등 모두 7800억 원에 이른다. 이에 비해 이들이 투자한 자기자본은 고작 3억5000만 원. 무려 200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셈이다.
만약 이들이 개발사업에 기여한 것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장동 일당의 실질적인 사업 기여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누구보다 대장동 일당이 이 사실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김만배가 남욱을 앉혀 놓고 “야, 이게 4000억짜리 도둑질이야. 형(김만배 본인) 아니면 니네 이 사업 못 했어”라고 큰소리를 쳤겠는가.(2014년 11월 무렵의 대화)
아니 ‘도둑질’이라는 표현 정도로는, 이들이 한 범죄 행각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판결문에 드러난 사업자 공모 및 선정 과정을 보면 이른바 ‘바리케이드 치기’와 ‘스펙 박기’ 등 그 바닥의 불법과 편법이 총동원됐다. ‘바리케이드 치기’는 다른 사업자가 아예 들어올 수 없게 노골적으로 벽을 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장동 일당은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건설사는 사업 신청도 할 수 없도록 규정에 못을 박아버렸다. 그리고 다시 ‘스펙 박기’를 통해 대장동 일당의 ‘스펙’에 맞춰 구체적인 사업자 선정 조건과 심사 기준을 ‘맞춤형’으로 적어 넣었다. 대장동 일당이 수험생인 동시에 출제와 채점까지 ‘1인 3역’을 한 것이다. 수익배분 방식도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만들어 넣었다.
이처럼 대장동 일당들이 번 돈은 악질적인 범죄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명백한데도, 수천억이 고스란히 이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장 대장동 일당 중 한 명인 남욱이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이 내려지기 무섭게 검찰에 재산 동결 해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검찰이 범죄 수익 일부로 보고 묶어 놓은 부동산 등 약 514억 원 재산 중 일부를 돌려 달라는 것인데,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각각 1250억 원과 250억 원의 재산을 동결 당한 김만배와 정영학도 언제 “내 돈 내 놓으라”고 덤벼들지 모른다. ‘도둑’만 탓할 일도 아니다. 항소 포기로 이들에게 ‘몽둥이’를 쥐여준 검찰 수뇌부는 더 문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여권은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더라도 민사소송을 통해 부당이득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통상 오랜 시일이 걸리기 마련인 민사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대장동 일당들이 마음대로 재산을 처분해 버리면 어디서 범죄 수익을 환수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형사 재판 무죄가 나왔는데, 민사 재판을 통해 부당이득을 환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란 것은 많은 법조인들이 지적하는 바다. 1심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공사가 대장동 관련 형사 소송 결과가 모두 나온 뒤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심히 곤란하다”며 “뒤늦게나마 피해 회복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여 범죄 피해 재산을 추징한 다음 이를 다시 피해자에게 환부하는 조치를 취하여 신속한 피해 회복을 도모할 필요성이 크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정 장관은 앞서 10일 출근길 브리핑에서 ‘외압설’을 부인하면서도 “성공한 수사, 성공한 재판”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항소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도 했다. 이제 검찰이 묶어 놓은 돈마저 대장동 일당이 찾아가겠다고 나선 이상, 정 장관은 다시 한번 국민 앞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남욱의 재산 동결 해제 요청은 항소 포기 단계에서 예상했던 것인지, 아니면 이럴 줄 모르고 항소 포기에 문제가 없다고 했던 것인지, 특히 민사소송의 최종 결과가 나오기에 앞서 대장동 일당이 범죄 수익을 처분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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