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그리 쉽게 ‘소신’ 뒤엎고 뒤늦게 무슨 말을 해봤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11일 23시 27분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불허를 지휘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에 대한 사퇴 요구가 검사장부터 평검사까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항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던 그가 법무부 연락 뒤 곧바로 항소 포기로 돌아선 것은 물론 제대로 된 설명도 내놓지 못하는 것이 기름을 부었다. 노 대행은 경위 설명을 요구하는 검사들에게 “법무부에 항소하겠다고 했다가 ‘항소가 어렵다’는 답을 들은 뒤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신중히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한마디를 두고, 검찰 수장이 손바닥 뒤집듯 결정을 바꾼 것이다.

노 대행은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을 지켜야 할 권력 기관의 수장이다. 법무부로부터 들은 말이 부담됐다 하더라도 항소가 소신이었다면 그 필요성에 대한 법리적 근거를 제시해 설득했어야 한다. 하지만 노 대행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러고는 결심을 뒤집은 까닭에 대해 ‘용산(대통령실)과 법무부와의 관계를 고려했다” 운운하고 있다.

검찰 수장으로서 기본적 책임을 방기한 것도 모자라 권력과의 관계를 내세워 자신의 표변을 이해해 달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래 놓고 일선 검사들에게 기소와 항소 여부를 소신껏 판단하라고 할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다. 오죽했으면 한 초임 검사가 “검사의 결정 근거는 법과 원칙이어야지, 정부 여당의 눈치를 봐선 안 된다”며 사퇴를 요구했겠나.

뒤늦게 사의를 표명한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수사팀 전원의 항소 필요 의견을 들어 항소장에 결재까지 해놓고 노 대행의 지시를 받은 뒤 돌연 항소를 포기했다. 노 대행과 의견이 달랐다고 항변했지만 포기 지시를 따라 놓고는 파장이 커지자 ‘나는 반대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니 무책임도 이런 무책임이 없다.

검찰은 그간 강력한 권한을 절제하지 못하거나, 권력의 눈치를 보다 뿌리 깊은 불신을 자초했다. 법무부 장관이 한마디 했다고 소신을 너무나 쉽게 바꾸며 외압 논란을 자초한 검찰 지휘부의 행태는 검찰이 자신보다 센 힘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이들이 검찰의 수장이고 중앙지검장이니 털끝만 한 신뢰도 얻기 어려운 것이다.


#검찰#대장동 사건#항소 불허#노만석#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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