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청년은 기회, 노년은 소득이 없는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19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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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부국장
박용 부국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진짜 대한민국’,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새롭게 대한민국’,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새로운 대통령’의 구호로 경쟁하고 있다. ‘진짜’ ‘새롭게’ ‘새로운’이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방향성은 빠진 정치적 구호다. 후보들은 18일 경제 분야 TV토론에서도 설득력 있는 비전을 내놓지 못했다. 기업 경영에선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개선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점에서 후보들이 쏟아낸 경제 공약은 ‘왜’와 ‘어떻게’가 빠진 낙제생 답안지처럼 허술하다.

‘왜’ ‘어떻게’ 빠진 묻지마 공약들

살기 좋은 나라는 적어도 청년에겐 일할 기회가 넘치고, 노년엔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나라다. 우리는 청년에겐 일자리가 부족하고, 노년은 빈곤에 시달리는 거꾸로 된 나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은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에게 돈을 뿌리고, 소득이 필요한 노년엔 더 오래 일하게 하는 ‘청개구리 대책’으로 문제를 덮는 데 급급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일자리는 지난달까지 10개월째 줄었다. 제조업 일자리 비중도 15%대로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청년 고용률은 45.3%로 전 연령층 중 유일하게 감소했다. ‘그냥 쉬고 있다’는 청년 비중은 5년 만에 가장 높다.

이 정도면 ‘일자리 비상’이 걸려야 정상인데 후보들은 왜 일자리 가뭄이 이어지는지, 무엇을 바꿔야 해결되는지 유권자들이 원하는 진단과 대안보다 청년 구직 지원금, 대출 확대, 임대주택 공급과 같이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는 진통제 청년정책을 일방적으로 늘어놓고 있다.

노인의 삶이 편안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다. 노인 빈곤 문제가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령 자영업자 수는 2015년 142만 명에서 2032년엔 248만 명으로 불어난다. 치밀한 준비도 없이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거나 정년 연장을 추진하는 건 고령화로 불어날 국가 재정 부담을 개인이나 기업의 몫으로 전가하려는 ‘폭탄 돌리기’에 가깝다.

이재명, 김문수 후보는 뜬금없이 인공지능(AI) 등 투자를 위한 100조 규모 펀드를 만들겠다는 유행 공약을 앞다퉈 내놨다. 중국이 돈이 없어서 엔비디아와 같은 회사를 못 만드는 건 아니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 인재 확보, 연구개발 인프라가 갖춰져야 성공할 수 있는 일이다. 검증도 없이 장밋빛 수익 공유를 명분으로 국민 돈까지 끌어오겠다는 건 자칫 투자 리스크를 국민에게 떠넘길 수 있다.

거꾸로 선 한국경제 바로 세워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계는 패권 경쟁을 위해 경제정책을 동원하는 ‘지경학(geoeconomics) 시대’로 진입했다.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려는 산업정책 역할은 커지고 국가 간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다. 한국이 낙오하지 않으려면 선거철 등장하는 틀에 박힌 규제개혁이나 재정 투입만으로 어렵다. 필요하면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인재 육성을 주도한 경제기획원과 같은 경제산업 정책 컨트롤타워를 지경학 시대에 맞게 정비하고 경제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청년 일자리 대책과 함께 젊어서 노후를 대비할 수 있게 소득 재분배 기능에 무게가 실린 국민연금 역할 조정 등이 포함된 연금 구조개혁도 병행해야 한다.

이번 대선이야말로 젊은이는 일이 없어 방황하고, 노인들은 소득을 찾아 공공근로 현장을 헤매는 거꾸로 선 한국 경제를 바로 세우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청년에겐 기회, 노년엔 소득이 얼마나 늘었는지 성과를 측정하고 매섭게 심판해야 한다. 기업이든 국가 경영이든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은 영원히 없다.

#대선후보#일자리#청년#노인#빈곤#경제정책#고령화#소득재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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