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펜타곤 넘버3’가 한국을 추켜세우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4일 23시 21분


콜비 국방차관 후보, ‘中 견제’ 우선론자
동맹도 손익 따져 순위 매기는 현실주의
韓 역량 평가하며 핵무장론 열어두지만
美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北 상대하란 것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부 정책차관에 지명된 엘브리지 콜비(45)는 똑 부러지는 악센트에 역사적 사례와 명언, 경구를 적절히 동원해 명쾌한 논리를 펴는 달변가다. 이달 초 상원 인준청문회에서도 콜비는 능란한 말솜씨를 보여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파괴적 리더십이 세계에 던진 소용돌이 속에선 그 역시 입조심을 해야 했다. 매사 거침없던 평소의 언사와 달리 민감한 이슈에선 매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콜비는 태생적으로 트럼프 진영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할아버지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데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안보 전문가로서, 트럼프가 그토록 혐오한다는 워싱턴 엘리트그룹의 일원이다. 한때 국방장관 또는 국가안보보좌관 유력 후보로도 거론됐지만 국방부 ‘넘버3’ 자리에 그친 것도 트럼프 2기의 ‘기득권 적폐 청산’이란 기준에 그리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콜비는 TV 앵커와 억만장자가 각각 장관·부장관을 꿰찬 국방부에서 미국 안보전략 전반을 책임질 브레인으로 주목의 대상이 됐다. 특히 트럼프 주니어, 일론 머스크, J D 밴스 등 트럼프 2기 최측근들이 그의 인준을 밀고 있는데, 트럼프의 예측불허 변덕과 좌충우돌 행보에도 나름 일관된 정책 기조가 있음을 보여줄 이론가 역할을 기대하는 듯하다.

사실 콜비는 트럼프 측근 그룹의 고립주의적 개입자제론(restrainers)과는 사뭇 결이 다른 우선순위론(prioritizers)의 대표 논객이다. 미국의 힘을 유럽·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겨 중국 견제에 집중하자는 주장인데, 상원 다수를 차지하는 전통적 패권론자(primacists)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청문회에서도 콜비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민주당 측과 ‘핵 가진 이란’을 감내하자는 과거 발언을 문제 삼는 공화당 측의 협공을 받았다.

콜비는 현실주의자를 자처한다. 동맹관계 정립도, 방어범위 설정도 철저한 비용·편익 분석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1년 발간한 책 ‘거부 전략(The Strategy of Denial)’에선 중국의 1순위 표적은 대만이 될 것이라며, 대만이 몰락하면 필리핀·베트남 방어도 어려워지면서 중국에 지역 패권을 내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콜비는 일찍이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에서 벗어나 명시적 안전보장을 약속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만은 미국에 필수적(vital)이지만 실존적(existential)이진 않다’며 말을 살짝 바꿨다. 그는 청문회에서 대만해협의 군사적 균형이 크게 악화됐다며 “우리 군을 파괴할 수도 있는 헛된 노력에 가담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대만에는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0%로 대폭 늘릴 것을 주문했다.

나아가 콜비는 “대만은 한국과 비슷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은 이스라엘 폴란드와 함께 강력한 군대를 가진 모범적 동맹이다. 한국의 손꼽히는 경제력과 일본 방어를 위한 지정학적 위치, 군사적 역량을 높이 산다. 한데 그런 공치사엔 늘 다른 주문이 따르기 마련이다. 콜비는 한국의 역량이면 북한의 공격에 충분히 독자적으로 맞설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중국의 대만 침공에 맞춰 북한이 남침할 경우 한국 홀로 버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의 핵무장에도 열린 태도를 보인다. 북한의 핵 고도화를 방해하면서 미사일방어(MD)를 개선하고 미국의 핵 억제력 가동, 중국에 대한 압박까지 모든 노력을 벌이고도 한계에 부딪힌다면 한국·일본의 ‘우호적 핵확산(friendly proliferation)’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핵 확산의 위험성과 전 세계에 미칠 엄청난 파장을 고려하면 결코 좋은 대안이 될 수 없는 ‘최후의 선택지’라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는다.

결국 미국은 중국과의 큰싸움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주한미군의 역할부터 재조정하면서 미국이 약속하지 못할 북핵 억제의 빈틈을 메울 방안으로 핵무장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어쩔 수 없이 핵무장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 올 수 있다는, 그렇다고 그 부정적 여파를 함께 감당해 주긴 어렵다는 정도의 얘기로 읽힌다.

트럼프 2기 출범 두 달, 국제사회에 친절한 리더 국가는 사라지고 난폭한 패권 국가가 등장했다. 유럽은 자강(自强)을 외치며 ‘미국 뺀 서방’을 꾸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막강한 군사력과 달러 패권을 쥔 미국이 없는 세계는 상상하기 어렵다. 동맹이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는 한국엔 더더욱 그렇다. 국내적 혼란 속에서도 미국을 제대로 읽고 면밀히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트럼프#엘브리지 콜비#우선순위론#국방부#안보 전략#핵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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