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헌재가 ‘계엄 종결자’ 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0일 23시 18분


정원수 부국장
정원수 부국장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공소장엔 이른바 ‘삼청동 안가(安家)’ 모임이 4번 등장한다.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군 장성에게 계엄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하던 지난해 3월 말∼4월 초부터, 5∼6월경, 6월 17일 각각 한 차례, 그리고 같은 해 12월 3일 비상계엄 당일 국무회의 직전에 대통령이 경찰 지휘부에 국회 통제 계획을 전달했을 때였다.

재판관 8명, 4 대 4 양극화에 소장 부재

공교롭게도 삼청동 안가에서 가장 가깝고, 대부분의 동선이 겹치는 곳이 헌법재판소의 소장 공관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헌재 측 인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인사는 대통령이 삼청동 안가에서 자주 저녁 모임을 하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하면서 불편해했다. 어쩌면 윤 대통령과 헌법재판소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헌재가 대통령 탄핵 심판을 심리하는 건 세 번째다. 하지만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초유의 상황이다. 무엇보다 법률가 출신 현직 대통령이 공개 변론 때 피청구인석에 앉아서 재판관들에게 탄핵 사유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부하 직원이던 증인들을 대통령이 직접 신문하고 있다.

게다가 8명의 재판관 중 절반인 4명(김형두 정정미 김복형 정형식)은 추천이나 지명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면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들 중 한 명은 한때 윤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로 검토했다. 증인뿐만 아니라 재판관들 역시 현직 대통령이 면전에 있다는 부담감을 적잖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마치 남극과 북극처럼 양극화된 헌재 재판관이다. 얼마 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 심판을 기각하면서 4 대 4로 나뉘었다. 방통위의 설립 및 입법 취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재판관들, 방통위법을 문구대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여기에 내부 불화설까지 불거지면서 헌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의 갈등을 조정할 리더가 잘 보이지 않는다. 헌재 소장 부재라는 리더십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시작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은 사안의 중대성, 파급효과 측면에서 교범이 될 정도의 재판이어야 한다. 헌법 해석의 최고 기관인 헌재의 재판 절차나 최종 판단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면 헌재의 위기, 더 나아가 국가의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헌재가 논란이 될 수 있는 증거들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공통점을 찾아서 전원일치 결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엔 여야 모두의 추천을 받았던 재판관이 중재 역할을 했다. “OOO 재판관이 있어 합의가 가능했다”는 평가를 들을 만한 재판관이 이번에도 나올까.

헌법재판소의 최고 의결 기구는 재판관들이 모두 모이는 평의(評議)다. 대법원의 전원합의체와 같다. 대법원과 달리 헌재에선 재판관들이 서로의 성명 대신 호(號)를 부르는 게 관례라고 한다. 소장 대행 역할을 맡고 있는 문형배 재판관은 ‘약수’로 불리는데,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전원일치냐, 아니냐’에 헌재 운명 달려

요즘 문 대행은 정치적 편향 논란에 휩싸여 있다. 대행부터 물처럼 더 자세를 낮추고 생각이 다른 동료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파면 여부를 떠나 비상계엄 사건은 사회적 파장이 워낙 커 만장일치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분쟁의 종결자’가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비상계엄#헌법재판소#재판관#정치적 편향#만장일치#설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