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넘기도록 이어지는 의료 공백
이대로 새 학기 맞으면 피해 막심
2월까지 2026학년 의대 정원 확정 짓고
의대 교육 정상화 방안 마련해야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지난해 2월 ‘의대 2000명 증원’ 발표로 시작된 의정 갈등이 해를 넘기도록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공의 복귀율은 저조하고 휴학 중인 의대생들 가운데 어느 정도가 새 학기에 돌아올지 불투명한 상태다. 매년 3000명 남짓 배출되던 신규 의사가 올해는 300명도 안 될 전망이다. 신규 전문의 배출도 예년의 20%로 급감했다. 3월이 되면 휴학생 3000명과 신입생 4500명이 한꺼번에 교육을 받느라 의대 교육 현장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10년간 교육의 혼란과 수련 과정의 혼란을 겪은 뒤 이후로는 취업의 혼란을 순차적으로 겪게 될 것이다.
신규 의사 배출 절벽도 문제지만 의대 교육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의대생들이 올해도 휴학하고 의대 증원이 정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1만2500명이 함께 교육받게 돼 교육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의대 증원 사태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앞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추가로 물지 않으려면 이제 이번 사태를 끝내야 한다.
정부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의정 갈등 사태에 대해 의료계에 사과했고, 2026학년도 의대 정원도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대 정원을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의료계의 반응은 아직 싸늘하다. 정부의 일방적 의대 증원으로 신뢰가 깨진 데다 계엄 포고령에 미복귀 전공의는 처단한다는 내용이 들어가면서 의료계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수습 방안을 마련하려면 전문성 있는 의료계가 나설 수밖에 없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협의체에는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참여해 요구 사항들을 능동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협의체 합의 사항을 시행하려면 법률 개정이 필요하므로 여당과 야당 대표가 참여해야 한다. 그동안 의정 협의체와 여의정 협의체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냈다. 새로 구성되는 협의체는 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출범 전 협의체 종료 시점과 회의 빈도를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
협의체가 논의해야 할 최우선 현안은 올해 입시의 의대 정원을 조정하는 일이다. 정부는 지난해의 경우 향후 10년간 의사 수요에 맞춰 증원 규모를 정했으나 올해는 대학별 교육 여건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힌 상태다. 오래전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해온 수험생들 사정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입시 안정성을 위해 다음 달까지는 의대 정원을 확정지어야 한다.
의사 인력 추계기구 구성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초고령화로 향후 10년간 의사가 1만 명 부족하다는 추계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지만 25년 후부터는 노인 인구마저 감소하기 시작해 의사가 남아돌게 된다. 독립적 추계 기구에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주기적으로 적정 의사 수를 추계하고 이에 근거해 의대 정원을 조정하면 이번 같은 의정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올해 7500명을 한꺼번에 교육하는 것이 가능한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증원되지 않은 서울의 8개 의대도 휴학생들 때문에 부담이 늘었지만 더 큰 문제는 교육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 의대들이다. 정부는 대학별 교육 과정과 학칙 등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폭 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부실 교육을 받은 의사 배출을 막으려면 의학교육평가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평가원이 교육부에 휘둘리지 않고 의학 교육에 대한 적절성 평가를 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전공의 수련 환경과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도 지속되어야 한다. 전공의들이 원하는 것은 처우 개선보다 질 좋은 교육 기회다. 그동안 전공의들은 병원의 온갖 잡다한 일을 떠맡는 진료 지원 인력의 역할도 해왔다. 앞으로는 수련받는 인적 자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와 수련 병원이 지원해야 한다.
고사 위기에 놓인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대책 마련도 당면 과제이나 장기적으로는 보건의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급격한 고령화로 의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금의 보건의료 체계로는 초고령사회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보건의료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는 보건의료 발전 계획의 수립이 절실하다.
마침 대한의사협회도 새 지도부를 구성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남은 한 달이 의정 갈등 사태의 추가 장기화를 막을 적기다. 여야의정이 고통스러운 의대 증원 사태를 책임 있게 마무리 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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