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트럼프 “내가 혼돈 그 자체라고? 한국을 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9일 23시 21분


시도 때도 없이 돌출 발언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선 한 달 넘게 침묵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이 있고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먼저 의중을 드러내기보단 한국과 협상하기 유리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이란 해석이 많다. 4년 전 1·6 의사당 폭동을 선동한 혐의를 받아온 트럼프로선 섣불리 메시지를 냈다간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지도자란 이미지가 더 강해질 수 있어 거리를 두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랬던 트럼프가 은연중 자신의 생각을 내비친 사적 대화가 공개됐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장녀 이방카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농담하듯 한국의 계엄 사태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다들 나더러 혼돈 그 자체(chaotic)라고 하지만 한국을 봐. 탄핵이 중단된다면 윤 대통령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4년 전 대선 패배에 불복해 결과를 뒤집으려 했다는 혐의를 받는 트럼프는 민주당으로부터 ‘민주주의의 적’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런 그가 “내가 아무리 심해도 한국만큼은 아니지 않으냐”는 취지로 말한 건 한국 정치에 대한 조롱으로 들린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한국을 현금인출기란 뜻의 ‘머니 머신’이라고 불렀다. 이번 계엄 사태를 거치며 ‘나보다 더 심한 혼돈의 나라’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한국에 대해 내정이 불안하고 민주주의가 취약한 나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취임하면 두툼한 청구서를 들이밀 참이었던 그에게 한국은 돈이 많은데 약점도 많아 다루기 쉬운 상대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대 사이에선 트럼프가 취임하면 윤 대통령을 도와줄 것이란 기대가 많다. 이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Stop The Steal(스톱 더 스틸·도둑질을 멈춰라)’이란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한다. ‘스톱 더 스틸’은 1·6 폭동 때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할 때 들었던 깃발 문구다. 양쪽 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헌법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공통점이 있는 만큼 트럼프가 윤 대통령에게 유대감을 느낄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철저히 이익을 보고 움직이는 트럼프가 탄핵 위기에 놓인 윤 대통령에게 손 내미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지 의문이다.

▷19일 윤 대통령의 구속에 변호인단은 “법치가 죽고 법 양심이 사라졌다”면서 시일야방성대곡이란 표현을 썼다.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1905년 굴욕적인 을사늑약을 강요한 일제를 규탄하며 ‘이날 목 놓아 크게 운다’는 뜻으로 쓴 말인데 이를 윤 대통령을 구속한 사법부를 규탄하는 데 동원한 것이다. 정작 목 놓아 울고 싶은 이들은 따로 있다. 트럼프 2기가 맹렬한 기세로 출범하는데 리더십이 실종된 정부를 바라만 봐야 하는 국민들일 것이다.

#트럼프#발언#비상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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