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미러클’ 원래 북한경제 가리켰던 말인 것 아세요?”[월요 초대석]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5일 2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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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적’과 14년간 씨름해 온 윤대희 전 경제수석
한국경제 실체 모르는 해외 평가에… 일희일비 필요 없지만, 깊이 자성해야
22년 전 문제 제기한 저출산·고령화… ‘내가 더 잘했었다면’ 책임감 느껴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유언은… ‘내 관에 코리안 미러클 넣어달라’

윤대희 가천대 석좌교수가 2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의 옛 한국개발연구원(KDI) 본관 앞에서 십수 년에 걸쳐 정부 정책 입안자들의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을 기록해온 ‘코리안 미러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종시로 KDI가 이전한 후 
이곳은 한국의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과 공유하는 글로벌지식협력단지로 사용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윤대희 가천대 석좌교수가 2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의 옛 한국개발연구원(KDI) 본관 앞에서 십수 년에 걸쳐 정부 정책 입안자들의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을 기록해온 ‘코리안 미러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종시로 KDI가 이전한 후 이곳은 한국의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과 공유하는 글로벌지식협력단지로 사용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코리안 미러클이란 말에서 ‘코리안’이 지칭한 게 원래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이었다는 거 아십니까?” 한국 사회를 통틀어 윤대희 가천대 석좌교수만큼 ‘한국의 기적’이란 말과 오래 씨름해 온 인물은 찾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그는 최근 ‘코리안 미러클’ 10권이 발간될 때까지 십수 년간 편찬위원으로 모두 참여했다. 최근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한국의 경제 기적은 끝났나’라는 기사와 관련해 그는 “어쩌다 우리 경제가 이런 소리를 듣게 됐나…. 착잡했다”라고 했다.》





● “한국의 기적, 당연히 대한민국 몫”

‘코리안 미러클’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하고, 세계에 알린 인물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조앤 로빈슨(1903∼1983)이다. 사회주의 성향의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그녀는 1960년대 초반 북한을 방문해 놀라운 경제발전상을 보고 영국에 돌아가 ‘한국의 기적에 관한 에세이(An Essay on Korean Miracle)’란 짧은 논문을 썼다.

6·25전쟁 직후 10년간 북한의 공업생산 연평균 증가율은 34.8%였다. 풍부한 수력에서 나오는 전기와 다양한 광물자원, 일제가 한반도 북쪽에 집중적으로 만든 산업시설 등 모든 조건이 남쪽보다 유리했다. 1970년대 초까지도 북한의 경제 사정은 한국보다 나았다.

“그 시절 정부 안에서 ‘한국의 기적’이란 말은 금기였어요. 북한이 한국보다 낫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던 거죠.” 2010년 진념 전 경제부총리 발의로 한국 경제성장 주역들의 정책 입안, 실행 과정을 육성 기록으로 남기자는 프로젝트가 출범했을 때 윤 교수는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코리안 미러클’이란 제목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만큼 ‘코리안 미러클’이란 말을 당당히 가져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 “한국 경제 변화 모르는 낡은 시각”

한국 경제의 미래를 비관한 FT 기사를 윤 교수는 원문까지 찾아 꼼꼼히 읽었다고 했다. “해외 언론이 우리 경제를 이렇게 어둡게 전망하는 일이 자주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잠재성장률은 계속 낮아지고, 국민의 자신감도 떨어진 상황에서 이런 지적이 나오니 더 마음이 복잡한 거죠.” 다만 몇몇 포인트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국가 주도 자본주의를 답습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300조 원 투자 결정은 한국식 성장 모델의 한계를 보여 준 것’이란 부분이 그랬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 경제가 정부가 ‘투자하라’고 지시하면 기업들이 따르는 수준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대기업들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움직이는 단계를 한참 전에 지났어요. 배고픔에서 시작된 한국 대기업의 성장 사고가 안주에서 비롯한 현재 유지 사고로 흘러간다고 꼬집었던데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는지 모르는 낡은 시각일 뿐이에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하면서 만난 청년 벤처기업가들의 열정과 눈빛을 생각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가 어둡다는 데 더 동의할 수 없어요.”

● “저출산, 방치한 정부 책임 커”


하지만 한국의 저출산 문제 등을 꼬집은 부분은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러면서 20여 년 전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장이던 2002년에 과장 한 명이 올린 보고서를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전년도 합계출산율이 ‘1.3명’이라고 돼 있는데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죠.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이 2.1명이잖아요.” 급하게 보건복지부와 협의하고, 청와대에 가 있는 선배 관료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 주재 국민경제자문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처음으로 ‘저출산·고령화’가 정부의 공식 의제로 다뤄졌다. 그가 경제수석을 지내던 2006년에는 한국 정부의 첫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나왔다.

“지금도 저출산 얘기만 나오면 책임감을 느껴요. 그때 정책을 잘못해서 이리 된 게 아닌가 해서…. 그간 정부가 380조 원을 썼다고 하는데, 실제 저출산 해소에 들어간 게 얼마나 되겠어요. 최근 정부 태도가 전보다 진지해진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출산 대응은 늦었지만, 고령화 대응은 아직 안 늦었어요. 고학력 여성, 은퇴자가 일할 기회를 더 만들어 노동력 부족의 충격파를 줄여야 해요. 인구구조가 달라진 만큼 법을 바꿔서라도 내국세의 20.79%를 쓰게 돼 있는 지방교육 재정교부금은 이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도 활용해야 합니다.”

● “정부 용기 부족이 부른 연금 개악”


한국의 요즘 정치 상황과 정책 의제들은 그가 청와대에 있던 2005∼2006년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연금 개혁을 마지막으로 실행에 옮긴 게 노무현 정부였는데, 17년 만에 다시 사회적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상태다.

“2개 개혁안을 토의한 500명 시민대표단이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선택한 걸 봤어요. 참여정부는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늦추려고 지지층 반발을 무릅쓰고, 복지부 장관까지 교체하면서 60%였던 소득대체율을 40%로 간신히 낮췄는데 그걸 다시 50%로 올리겠다니, 이게 어떻게 개혁입니까. 정부와 정치권이 책임감을 갖고 용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시민대표단의 56%가 찬성한 ‘보험료율 13%, 소득 대체율 50%안’이 시행될 경우 연금 고갈 시점은 2055년에서 불과 6년 늦춰진다. 대신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미래에 소득의 40% 정도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국민연금 재정의 안정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개악’이라며 차라리 지금대로 놔두는 게 낫다고 한다.

● “지지층 반발해도 성장 위해 FTA 추진”


미중의 경제패권 갈등과 글로벌 경제 블록화로 무역·수출 환경이 급변하는 걸 지켜보는 그의 심정은 남다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기간 중 경제수석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협상 전 과정에 관여했다. 최근 발간된 ‘코리안 미러클’ 10권의 주제도 마침 ‘한미 FTA’다. 그새 중국은 많은 분야에서 한국을 따라잡아 대중무역이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올해 2월 이후 3개월째 한국의 대미 수출은 대중 수출을 넘어섰다. 한미 FTA가 없었다면 우리 경제는 지금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을 벌이는 중에 당시 보수 진영에선 ‘음모설’이 돌았어요. 진보 지지층이 쌍수 들고 반대하는 협상을 추진하는 건 다른 속셈이 있어서란 거죠. 막판에 미국이 못 받아들일 조건을 내걸어 판을 깨고, 지지층을 단번에 결집해 차기 대선에 이용하려 한다는 겁니다. ‘이런 말도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국가 차원의 문제를 정략으로 이용하는 그런 수준의 대통령으로 나를 보는 거냐’며 섭섭해합디다. 그래도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에 개방이 꼭 필요하다는 노 대통령의 소신이 확고해 결국 한미 FTA를 타결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기적, 여야 모두 이어갈 책임”


여소야대를 만든 22대 총선 결과를 놓고 FT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리더십이 분열돼 차기 대선까지 3년 이상 정국이 교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교수는 “노무현 정부 초기 2년간은 여소야대였고 중간에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여권과 지지층의 반발로 결국 대통령은 탈당까지 해야 했다.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했다.

“1980년대 민주화의 결과물인 ‘87년 체제’의 효용성이 다해 가고 있어요. 5년 단임제 대통령제에선 정권 교체 후 업무 파악에만 6개월, 1년이 지나가요. 정책과제를 정해 입법, 시행하는 데 평균 35개월이 걸립니다. 중간에 선거로 여소야대가 되면 누구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어요. 이번에 다수당이 된 야당은 앞으로 3년간 국가 경영과 관련해 결과까지 책임질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적’이 좌파, 우파 어느 쪽 전유물이 아닌 것처럼, 경제 기적을 계속 이어갈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는 겁니다.”

● 에필로그


경제부처 출신 관료들의 모임인 ‘재경회’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함께 추진한 코리안 미러클 프로젝트에 대한 참가자들의 애정과 자부심은 각별하다. 2016년 하반기에 ‘외환위기편’이 나왔을 때 박근혜 정부의 탄핵 정국 때문에 발간식이 늦어지는 일이 있었다.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사방에 전화해 식을 빨리 열자고 심하게 채근했다. 우여곡절 끝에 발간식을 연 두 달 뒤 서두른 이유가 밝혀졌다. 지병이 악화돼 강 전 장관이 타계한 것이다. 그의 유언은 “내 관에 코리안 미러클을 넣어 달라”였다.

윤대희 교수는

1949년 인천 출생. 1975년 행정고시 17회에 합격했고, 이후 경제기획원 재정계획과장, 제네바 대표부 경제참사관,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장과 기획관리실장을 지냈다. 대통령경제정책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2006년 경제수석비서관, 2007년에 12대 국무조정실장으로 국민연금 개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깊이 관여했다. 2018∼2022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거쳐 현재 가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윤대희 전 경제수석#한국경제#해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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