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희창]표 되는 법은 속전속결하면서… 공급망 대응은 질질 끄는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6일 2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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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창 경제부 차장
박희창 경제부 차장
“5000만 원 받고 1억 원 더.”

내년 시행을 앞둔 ‘혼인·출산 증여 재산 공제’는 이 열두 글자로 요약된다. 현재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돈을 받을 때 10년간 5000만 원까진 세금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추가로 1억 원까지 증여세를 안 내도 된다. 이런 내용을 담은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문턱을 넘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미리 증여해 준 재산이 없다면 결혼이나 출산 때 1억5000만 원을 받아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개정안을 국회에 내고 기재위에서 의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두 달이다. 조만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확정될 예정이다. ‘부자 감세’라고 반대했던 야당이 입장을 바꾸면서 처리가 빨라졌다. 야당의 합의 조건인 미혼 출산이 더해지면서 원래 정부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이들까지 증여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결혼은 안 했지만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자녀가 태어난 날부터 2년 이내에 부모로부터 받은 1억5000만 원까지는 증여세를 물지 않는다.

찬반은 엇갈린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9월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혼인 증여 재산 공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56.6%(20∼50세 미혼 성인 기준)였다. 반대하는 이들은 43.4%를 차지했다.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증여받을 재산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절반을 넘었다. 결혼이나 출산을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30%를 밑돌았다. 정부는 결혼과 출산에 보탬이 되기 위해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다.

세금 면제 혜택은 증여액이 많을수록 커진다. 기재위 검토보고서는 3억 원을 결혼 자금으로 받을 때 현재는 증여세로 4000만 원을 내지만 공제 제도 시행 이후에는 2000만 원으로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재산이 많은 부자들에게 유리한 구조인 것이다. 기재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검토 내용을 들은 국회의원 중 누구도 관련 질의를 하지 않았다. 엇갈리는 민심, 누진 구조의 문제점 등이 있는데도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여야는 웬일로 다투지 않았다.

여야의 합심은 요소수까진 이어지지 않았다. 올 들어 10월까지 한국에 수입된 산업·차량용 요소 중 중국산은 92%에 달한다. 2022년보다 20%포인트 불었다. 중국산 요소 가격이 싸기 때문에 중국 의존도가 다시 커졌다. 중국은 내년 3월까지 요소 수출을 제한하고 내년 연간 요소 수출량을 평소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일 것으로 전해졌다. 2021년 요소수 대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2년간 정부 대응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기업들이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비축 물량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급망 기본법은 1년 2개월째 국회에 머물러 있다. 신설 위원회 소속 등을 두고 여야가 이견을 보이면서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혼인·출산 증여 재산 공제를 빠르게 처리한 데는 여러 셈법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재산을 물려줄 때 세금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내년 4월 총선에서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다. 이제라도 잠깐 짬을 내 국가를 위한 손익계산을 해봐야 한다. 지금도 늦었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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