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임용한의 전쟁사]〈254〉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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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강연이나 방송을 하고 나면 이런 말로 의문을 표시하는 분이 곧잘 있다. 일리는 있는 말이다. 고려사는 조선왕조에서 국가사업으로 편찬한 역사이다. 당연히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생략과 왜곡도 당연히 발생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래도 조용한 편이다. 역사에는 전쟁에서 패배해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 나라, 타국에 병합되어 언어와 문화마저 잃어버린 나라도 많다. 때로 그런 나라와 도시는 파괴자의 전승비에서나 이름을 읽을 수 있다. 페르시아는 거대한 제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전쟁에 대한 자신들의 기록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 우리는 이 거대 제국의 멸망뿐 아니라 성장 과정도 대부분을 그리스 관찰자들의 기록에 의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 기록, 역사학의 존재, 설명 자체를 회의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다. 역사학이란 그런 왜곡 너머에 있는 진실을 찾는 학문이다. 다른 학문은 그렇지 않은가? 천문학도 승자의 역사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은 우리 시야에 가깝게 있는 별, 밝은 별, 우리 시야에 먼저 도달해서 저 멀리 있는 빛을 가리는 별들로 시작한다. 그 너머에 있는 빛을 발견하고, 가시적인 세계 너머의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불확실성과의 싸움은 모든 학문과 과학의 존재 이유이다.

패자의 기록도 왜곡이 있다. 패배를 변명하고, 상대의 악을 과장한다. 승자든 패자든 왜곡에도 질이 있다. 로멜의 전투일지를 보면 상대의 전력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일이다. 적정을 속속들이 아는 경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로멜의 대담한 승부가 더 대단한 것이다. 반대로 승리가 주는 쾌감, 패자의 울분에 사로잡히면 이길 수 있는 전투도 패한다. 자기 합리화를 위한 역사, 정신 승리를 위한 역사. 이것이 진정으로 위험한 승자의 역사이다.
#역사#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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