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의 심리[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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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자신의 잘못이어도 힘들고 난처한 처지에 놓이면 회피하거나 변명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넘기려 합니다. 이에 더하여 주변 사람들을 동원하면서 예상되는 비난과 질책과 공격에 저항하는 전력과 전술의 담장을 쌓아 자신을 쉽게 넘보지 못하게 합니다. 회피는 본능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몸과 마음에 새긴 생존 기능입니다. 회피 본능이 없다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회피에는 적극적인 회피와 소극적인 회피가 있습니다. 소극적인 회피는 숨어서 침묵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회피는 회피 외에도 부정, 합리화, 투사 등 다른 방어 기제도 동원해 막는 겁니다. 더 적극적이면 전략을 수립하고 전술을 구사해 공격적으로 대처합니다.

갑자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 주변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본인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가 어렵거나 짐작이 가더라도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방관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합니다. 방관자는 직접 나서서 관여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봅니다. 방관의 풍경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앉아서 봅니다. 서서 팔짱을 끼고 보기도 합니다. 머리 아프면 그냥 내버려 두고 시간의 흐름에 맡깁니다. 물론 방관자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흥에 겨운 구경꾼이 되기에는 그 사람과 엮인 일들이 워낙 복잡합니다. 늪에 빠져 꼼짝도 할 수 없는, 온몸이 마비된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본격적으로 일이 커져서 적대적 세력과 우리 편이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는 일이 잦아지면 스트레스 수준이 확 올라갑니다.

방관자를 도덕성에 결함이 있는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 있으나 사실은 그저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방관하지 않고 용기를 내서 문제에 개입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사람일 뿐입니다. 침묵하거나 주춤거리는 사람일 뿐입니다. 누구든지 상황에 따라 방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방관은 사람들이 한 장소, 한 집단에 모여 있을 때 가장 쉽게 일어납니다. 혼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행동을 사람들이 모이면 방관자가 되어서 감히 저지릅니다. 집단 안에서는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익명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복면으로 얼굴을 감추는 것처럼 방관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간판 뒤에 숨습니다. 그러니 누가 어디에 소속이 된다는 것은 그 집단에 딸려서 숨는 겁니다. 본모습이 가려지면 평소 믿는 가치에 위반되는 행위에도 큰 갈등 없이 끼어듭니다.

집단 구성원 간에 경쟁심이 유발되면 방관적 태도는 더욱 팽창되면서 견고해집니다. 자기만의 고유성을 잃어버리면서 스스로의 마음과 행동을 살피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집단이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면 순응합니다. 적대적인 싸움 과정에서 ‘그들’과 구별되는 ‘우리’ 사이가 끈끈해지면 지시는 절대적 가치가 됩니다. 복종이 반복되면서 지도자의 카리스마, 그리고 그 사람이 내세우는 가치를 자신의 것인 양 받아들입니다.

위기를 벗어나려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 방관자의 늪에 빠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최선을 다합니다. 자신을 향한 비판과 공격을 막아낼 효과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쓰는 가장 좋은 전술은 주변 사람들의 판단력을 마비시켜 자신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고 쉽게 따르도록 하는 겁니다. 설령 다른 의견이 있고 자신의 의도를 의심해도 결국은 순응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궁리합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도 영리하게 되풀이하면 익숙해지고 사실처럼 들려서 따르게 됩니다. 거기에 그 사람을 꼭 집어서 개인적인 이득이 생길 가능성도 거론하면 더할 나위 없는 계책을 쓴 겁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장소에서는 범죄가 전혀 안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대와 달리 범죄 현장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방관자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끔찍한 일이 일어나 버리는 현상을 사회 심리학에서 ‘방관자 효과’라고 합니다. 서로 주변의 눈치만 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개입하지 않는 겁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적 책임이 분산되어 개인이 뉘우칠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싸우기보다는 도망치려는 본능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막상 용기를 내서 끼어들려고 해도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옳지 않은 상황을 끝내는 바람직한 방법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개입입니다. 그러나 방관자의 딜레마에 빠져, 머물지도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멀리서 지켜보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부담과 상처를 줍니다. 그러니 힘 있는 사람들이 중요한 문제를 팔짱을 끼고 지켜만 보는 짓은 사회적 자산을 크게 낭비하는 소모적인 행위입니다. 그렇게 방관하는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에너지를 상당 부분 잃은 상태에 갇혀 있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사회적 압력뿐입니다. 그러나 방관으로 취하게 될 현실적 이득이 결정적으로 크다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배짱대로 사는 사람의 존재가 가슴 저리게 그리워도 한낱 부질없는 꿈인 것 같습니다. 권좌(權座)에 대한 꿈과는 감히 겨룰 길이 없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방관자#심리#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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