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은]90m 절벽서 떨어진 커플 살린 한국車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9일 21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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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찌그러진 채 뒤집어진 차량에서 사람이 생존하긴 어려워 보였다. 험준한 바위 협곡 밑으로 90m 넘게 굴러 떨어진 차였다. 15초간의 낙하 충격으로 타이어까지 튕겨 나갔다. 그런데 차량 안에 타고 있던 미국인 커플은 뼈 하나 부러진 곳이 없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함께 기적과 같은 생존 사실을 알렸다. “현대 엘란트라(국내 모델명 아반떼) N은 훌륭한 차”라면서.

▷이달 중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났던 차량 사고의 생존자 커플은 뒤늦게 진행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백만분의 1 확률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요즘 한국 자동차의 안전성을 따져보면 사실 그 확률을 확 올려서 말해도 무리가 없다. 지난해 2월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가 제네시스 GV80를 타고 가다 벌어진 충돌 사고에서 살아남았고, 올해는 유명 아이스하키 선수 야로미르 야그르가 기아 EV6를 몰다 트램에 부딪혔지만 경미한 부상에 그쳤다. 그는 당시 “기아가 나를 구했다”고 했다.

▷교통사고 시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내부 안전공간 확보와 충격 완화다. 충격을 받아도 비틀리지 않고 버티는 힘이 좋은 초고장력 강판의 사용 비중이 높을수록 안전성이 커진다. 반대로 충격 흡수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아코디언처럼 잘 구부러지게 만드는 기술도 필요하다. 용접 기술과 접착제, 내부 보강재 성능도 영향을 미친다. 최대 10개에 이르는 에어백 중에는 탑승자들끼리 머리가 부딪혀 깨지지 않도록 중간 히터에서 터지는 것도 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안전성 강화 경쟁은 치열하다. 현대차의 경우 국내에서만 연간 700여 회의 충돌 테스트를 진행한다. 영하 40도의 혹한에서부터 데스밸리 사막의 혹서까지 다양한 환경을 설정해 실험용 차량을 떨어뜨리고 굴리고 처박는다. 사람 모양의 실험용 더미도 나이와 성별 등 특성에 따라 160개가 넘는다. 더미의 몸 곳곳에 부착된 센서도 150개에 이른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별도의 시뮬레이션 테스트까지 1만5000회를 거치고, 볼보는 교통사고 데이터를 분석, 누적해 연구에 반영하고 있다.

▷눈부신 기술 발달 덕에 “이제 웬만한 자동차 사고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말도 나온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에서 안전성 최고 등급인 ‘TSP+’를 받는 국산차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3000명에 육박한다. 하드웨어 안전장치에만 기대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음주운전 근절, 안전벨트 착용, 상대방을 배려하는 신중한 운전 같은 기본이 지켜져야 한다. 자동차 안전성의 핵심 키도 결국 사람이 쥐고 있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90m 절벽#미국인 커플#추락#생존#한국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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