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받은 ‘헬리콥터 벤’ [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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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1977년)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1927년 대폭락’(1955년)에서 주장한 이후 대공황의 원인으로 상식처럼 굳어진 견해가 투기 과열과 이로 인한 주식시장의 붕괴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은 1963년 안나 슈워츠와 함께 ‘미국 통화의 역사, 1867∼1960’이라는 책을 써서 대공황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서툰 긴축 통화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통화주의의 시작이다.

▷프리드먼의 90세 생일을 축하하는 학술 행사가 2002년 열렸다. 당시 연준 이사였던 벤 버냉키는 그 행사에 참석해 “당신이 쓴 책에 빠져 통화사를 공부했다”면서 “대공황과 관련해 당신이 옳았다. 우리(연준)가 죄송하다. 당신 덕분에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연설을 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08년 버냉키는 연준 의장으로서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가 찾아왔을 때 헬리콥터에서 뿌리듯 돈을 풀어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미국과 세계 경제를 구했다. 연준 의장은 대부분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건 버냉키가 처음이다.

▷버냉키는 하버드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MIT는 폴 새뮤얼슨이 1940년대 하버드대에서 옮겨온 이후 케인스주의를 주도했다. 그러나 버냉키가 입학한 1970년대 중반에는 이미 케인스주의에 의문을 품은 시카고학파의 신고전주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케인스주의에도 반(反)케인스주의에도 동의하지 않고 케인스주의와 신고전주의의 종합을 추구했다.

▷버냉키는 대공황 연구를 거시경제학의 성배(聖杯)로 여겼다. 지질학을 연구하려면 지진을 연구해야 하듯이 경제학을 이해하려면 대공황을 연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2000년 ‘대공황 연구’란 책을 통해 연준이 주식시장의 투기적 과열에 대한 경계심으로 성급히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바람에 대공황을 격화시켰다는 논거를 집대성했다.

▷그러나 버냉키의 ‘통화주의’는 프리드먼적이라기보다 케인스적이다. 그의 통화주의는 케인스식 재정 부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재정 부양을 동반한 것이다. 돈을 풀었으면 제때 회수해야 하는데 경기가 다시 침체로 빠져들까 계속 우려하면서 회수를 주저한 태도도 프리드먼적이지 않다. 그가 제때 회수하지 못한 돈이 자산에 거품으로 끼어 있다가 코로나 유행 시 풀린 돈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는 비판이 있다. 2008년 이후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평가는 이번 인플레이션이 끝나봐야 객관적으로 내려질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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