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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국정감사 증인, 부르는 권력과 빼주는 권력[오늘과 내일/김용석]

입력 2022-09-24 03:00업데이트 2022-09-2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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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남용으로 이어지는
무분별한 기업인 증인 채택
김용석 산업1부장
몇 년 전 한 대기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대응 태스크포스(TF) 팀이 꾸려졌다. 담당자들은 국회 소관 상임위를 찾아가 보좌진을 만났다. 여러 의원실로부터 국감 질의 기초 자료를 정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열심히 작성해 제출하니 이번엔 정부 부처에서 연락이 왔다. 국회의원들 질의에 답할 자료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어느새 TF 팀 한편에선 의원들 질의를, 한편에선 정부 답변을 만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TF 팀원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국정 운영 주체가 아닌 기업들이 국감에 이토록 목을 매는 건 매번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들이 증인 채택 1순위에 오르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한 상임위에서만 벌써 100명 가까운 CEO들이 증인 후보에 오르내린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후에 벌어지는 일도 매년 똑같다. 상임위별로 여러 버전의 증인 명단 초안이 돌아다니면 기업 대관 담당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보좌진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시작한다. 차장, 부장이 찾아가 설득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임원이 찾아가 읍소한다. 읍소하는 사람 지위가 높을수록 증인 명단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 보좌진 출신이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 명단 제외가 용이해진다.

기업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감이 기업 성토장이 되기 일쑤여서다. 국정감사가 ‘기업 감사’가 됐다는 말은 이미 구문이다. 기업들은 전 국민 앞에서 CEO가 궁지에 몰리거나 기업 치부를 드러내는 일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증인으로 불러 놓고 새벽까지 질문 하나 하지 않거나 업무와 무관한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기업 경영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뒤로 물러나거나 국감 출석을 전담할 경영진을 선임하는 기이한 모습도 나온다.

문제의 핵심은 국감 증인 선정이 아니라 증인 명단에서 빼주는 과정에 있다. 국회는 국정을 감시하기 위해 증인을 출석시킬 권한 등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았다. 매번 기업 CEO를 증인석에 세울 정도로 대한민국 국정의 가장 큰 문제가 기업에 있다고 보지 않지만 어쨌든 필요하다면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업 CEO 증인 신청은 국정 감시 수단이라기보다 국회의 무기가 된 것처럼 보인다. 권력은 증인을 부를 수 있다는 데서 기인하지만 실제 활용은 증인을 빼주는 것으로 발현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증인 채택을 빌미로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기업 CEO를 집요하게 괴롭힌 국회의원 지역구에 해당 기업 시설이 들어섰다는 얘기가 풍문으로 돌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어떤 보좌진들은 증인 선정 권한을 기업으로 전직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듯하다”라고 꼬집었다. 국감으로 곤욕을 치른 기업들이 유독 국회 보좌진 출신 대관 임원을 대거 영입한 것이 우연의 산물일까.

국감을 앞둔 국회는 증인 명단 초안을 만드는 보좌진의 수완과 그 명단에서 CEO를 빼려는 대관 직원들 능력의 대결장이 돼 버린 듯하다. 그사이에 국민의 이익은 설 자리가 없다.

실현되기 어렵지만 모든 의원실이 처음에 요청한 증인을 모두 불러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백 명의 CEO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국감장에 불려 와 병풍처럼 공손히 서 있는 장면을 보면서 국민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국회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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