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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이진영]뇌 수술醫 없는 병원

입력 2022-08-08 03:00업데이트 2022-08-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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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은 미 뉴스위크의 ‘2022 세계 최고 병원’ 평가에서 30위를 기록한 세계 의료 선도 병원이다. 국내에선 4년 연속 1위다. 그런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수술할 의사가 없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뇌를 진료하는 ‘신경’ 분야에서 세계 8위라는 평가를 받는 병원에서 발생한 일이다. 정부는 병원의 대처 과정을 조사한 후 근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아산병원 의사 1659명 중 신경외과 의사는 25명인데 이 중 머리를 여는 개두(開頭)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이다. 간호사 A 씨가 일요일인 지난달 24일 오전 출근 직후 심한 두통으로 쓰러졌을 때 2명 중 한 명은 해외 학회에, 다른 한 명은 지방에 갔다고 한다. 골든타임 내 조치가 결정적인 분야 의사가 동시에 자리를 비워야 했을까. A 씨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진 후 지난달 30일 사망했다.

▷A 씨가 특별히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뇌졸중 응급의료 체계는 허술하다. 고령 인구 급증으로 개두 수술 환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뇌혈관 외과의는 146명에 불과해 지방 대학병원의 경우 아예 없는 곳도 많다. 정부의 뇌졸중 적정성 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은 서울아산병원에도 의사 2명이 1년 365일 ‘퐁당퐁당’ 당직을 설 정도다. 머리를 여는 어렵고 위험한 수술임에도 의료수가가 가산료까지 합쳐 400만 원도 안 된다. 성형수술 비용 수준이다. 병원에선 장사가 되지 않으니 적정 인력을 두지 않고, 이 분야 지원자도 줄고 있어 젊고 유능한 뇌혈관 외과의는 멸종 위기라고 한다.

▷왜곡된 의료수가 체계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생명과 직결되는 ‘바이털(필수의료)’ 분야는 붕괴 직전이다. 메스를 잡아야 할 외과의는 요양병원으로, 신경외과 의사는 MRI 찍는 척추통증 클리닉으로, 흉부외과 의사는 하지정맥 클리닉으로 간다. 산부인과 전공의 10명 중 6명은 전문의 수료 후 분만을 포기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출생아 10만 명당 모성 사망자 수는 2017년 7.8명에서 2020년 11.8명으로 증가했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7명보다 적다. 의대 정원은 17년째 동결이다. 그 빈자리를 약 1만 명의 간호사가 ‘PA(Physician Assistant)’라는 직함으로 의사 업무를 대행하며 불법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반영해 적정 의료 인력을 다시 계산하고, 수가 체계를 바로잡아 어렵게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의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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