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문라이팅’ 말고 풀타임으로 일할 자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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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잡러 양산한 文정부 노동정책
‘일할 자유’ 확대하는 개혁 시급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부친에게서 대학 입학 선물로 받아 검사가 된 뒤에도 들고 다니며 읽었다는 애독서가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다. 직접 고쳤다는 대통령 취임사에 ‘자유’란 말이 35번 들어간 데도 이 책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러시아에서 직업이 매력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흔히 불법적이거나, 아니면 법규에 저촉되지 않는 ‘부업’의 기회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모스크바에서 가구집기, 시설이 고장 날 경우 국영 수리점에 전화하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업자’를 고용하면 대개는 국영 수리점 직원일 게 뻔한 일이지만, 가구는 신속히 고쳐질 것이다.”

구소련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비효율과 이중성을 꼬집은 내용인데 원문에 사용된 부업이란 단어는 ‘문라이팅(moonlighting)’, 부업하는 사람은 ‘문라이터(moonlighter)’다. 해가 떠 있는 낮에 하는 일이 본업이라면 밤에 달빛 아래서 하는 일이 부업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생각하면서 ‘월광 소나타’를 쳤다는 전 청와대 대변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표현이기도 하다.

지난 정부에서 한국의 부업인구, 복수의 직업을 가진 ‘N잡러’는 크게 늘었다. 작년 월평균 부업인구 수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부업하는 걸 감추는 사람이 적지 않아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기그(Gig) 이코노미’의 확산으로 부업이 늘어나는 건 세계적 추세지만 한국 부업인구는 노동자의 자발적 선택보다 정부 정책, 제도의 실패로 늘었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정부 초 최저임금이 2년 만에 30% 가까이 급등하자 식당, 카페, 편의점 주인들은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치를 더 얹어줘야 하는 주휴수당을 아끼려고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잘게 쪼갰다. 그 바람에 한곳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던 직원, 알바생들은 두세 곳 일터를 옮겨 다니는 N잡러가 됐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기 근로자 수가 올해 4월 역대 최대인 154만 명으로 불어난 이유다. 경직적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에 적용되자 초과근무 수당이 줄어든 근로자들은 부업을 찾아 나서고 있다. 코로나19로 영업시간이 제한된 동안에는 자영업자 사장들도 생계유지를 위해 택배, 음식배달 오토바이를 몰아야 했다.

본업만으로 원하는 소득을 얻을 기회가 제도적으로 제한되면서 구소련에서 그랬듯 부업이 생계유지의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다. 프리드먼은 자본주의 사회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본질적 경제적 자유로 ‘자기 소득을 어떻게 쓸지 선택할 자유’, ‘재산을 소유할 자유’와 함께 ‘자기가 소유한 자원을 가치관에 따라 사용할 자유’를 꼽았다. 신체, 두뇌가 유일한 자원인 노동자에게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자유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노동개혁’을 강조했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 터키에만 남아 있는 주휴수당은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뒤떨어진 제도다. 주 52시간제와 관련해 한국처럼 월 단위로 근로시간 제한을 맞추도록 하는 선진국도 거의 없다. 임금을 많이 받는 전문직 노동자는 근로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세계적인 트렌드다.

대통령선거, 지방선거로 이어지던 정치의 계절은 끝났다. 코로나19도 진정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새 정부는 대선을 통해 약속한 노동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조각난 일자리, N잡러를 양산한 각종 제도를 손봐 국민에게 마음껏 일할 자유를 돌려주는 게 그중 제일 급한 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n잡러#일할 자유#풀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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