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역량 폄훼 유감”이라는 경찰, 정말 유감스러워야 할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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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사회부 차장
조종엽 사회부 차장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 법을 두고 문재인 정권이 새 정부 출범 후 자신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해 만든 ‘방탄법’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경찰이 검찰보다 더 독립적이고,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더불어민주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현 정권 초기인 2018년 ‘드루킹’ 사건 당시를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경찰은 ‘드루킹’ 김동원 씨를 체포한 뒤에도 한 달 가까이 증거 확보에 필요한 추가 강제 수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언론 보도로 사건 내용이 알려지고, 검찰의 보완 지시를 받고서야 드루킹 통신기록 영장을 법원에 신청했다. 문재인 대선 캠프의 핵심이자 정권 실세로 꼽히는 김경수 당시 민주당 의원이 드루킹과 관련됐을지 모르는 정황을, 경찰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닐까.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검수완박 입법을 두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신분을 가진 검찰에 비해 경찰이 권력을 훨씬 잘 따르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검찰은 권력의 눈 밖에 나서 옷을 벗어도 변호사로 먹고살 수 있지만, 경찰은 그렇지 못하니 권력의 눈치를 더 많이 본다는 뜻이다. 검수완박이 현 정권 방탄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권력이 가리키면 달려가 물어 오는 게 경찰인데, 무슨 걱정이냐’는 취지의 얘기를 대놓고 하는 걸 보면 여당 중진들이 경찰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알 수 있다.

3일 검수완박 법안 국무회의 의결 직후 김창룡 경찰청장은 내부 전산망을 통해 전국 경찰에게 서한을 보냈다. 한동안 침묵했던 김 청장은 뒤늦게 “지난 몇 주간 경찰의 수사 역량을 폄훼하는 주장이 이어져 답답하고 언짢으셨을 것이다. 저 또한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검찰이 검수완박 반대 근거로 경찰의 부실 수사를 연이어 언급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경찰이 정말 유감스러워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는 것 아닐까. 예를 들면 경찰을 두고 ‘권력의 개’라고 부른 것이나 다름없는 여당 실세의 모욕, 권력형 비리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에 비해 경찰의 칼은 무디고 무섭지 않다는 권력자들의 기대 같은 것들 말이다.

민생 범죄 수사도 문제다. 민생 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들 사이에선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부실 수사와 수사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검수완박 법안 통과로 경찰의 수사 총량이 더 늘면 사건 적체도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죽은 권력이든 산 권력이든 민생 범죄든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수사하는 것이다. 드루킹 사건 당시 경찰 수뇌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자신들의 편을 드는 청와대 눈치를 봤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정권에 코드를 맞춘 대가로 가져온 수사권이라면 자랑스러울 수 없다. ‘수사 역량 부족’ 주장이 폄훼인지 아닌지, 경찰 스스로 증명해야 할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역량 폄훼 유감#검수완박#국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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