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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름을 걸고 일한다는 것[동아광장/최인아]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입력 2022-02-19 03:00업데이트 2022-02-19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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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주는 이 없으면 이름 대신 ‘무명씨’
명함 속 이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
간절함 갖고 일해야 스스로 당당해진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예전에 본 어느 라디오 광고에 이런 게 있었다. 아이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여기 잡초가 있어요.”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OO야, 세상에 잡초라는 이름의 풀은 없어.”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분명 다른 풀과는 다른 고유한 풀일 텐데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니 이름 없는 잡초가 되는구나, 우리가 한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은 때때로 매정하고 무성의하구나. 어떤 제품의 광고인지는 잊었지만 광고 카피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다.

고등학교 때인가 국사 수업도 생각난다. 불국사와 석가탑, 다보탑에 대해 배울 때였다.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때 지어졌다가 훗날 재상 김대성에 의해 지금의 불국사로 대규모 중창이 이뤄졌고 그때 석가탑과 다보탑이 함께 지어졌다. 선생님은 이 내용을 설명한 후 곧장 두 탑의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딴생각에 빠져들었다. 실제로 돌을 쪼아 탑을 만든 이는 김대성이 아닌데 정작 저 대단한 작품을 만든 이는 이름이 없구나, 지배 계급이 아닌 ‘무명씨’였던 그 시절의 예술가요 장이들은 존재가 드러나질 않는구나….

지금 같은 자유민주주의 시대에도 이름 없는 이들이 있다. 이름 석 자가 있어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무명씨로 칭해진다. 심지어 인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란 말도 떠돈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유명해진다는 건 이름을 얻는 일과 다름없다.

최근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생겼다. 월요일 밤을 기다려 ‘싱어게인2’를 본방사수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엔 짧지 않은 세월 가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나와 경연한다. 어쩌면 다들 그토록 잘하는지 볼 때마다 감탄한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지 케이팝과 한류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게 우연이 아니구나 싶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선 가수들이 ‘톱10’에 들 때까지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무대를 뒤흔들어도 7호 가수, 31호 가수, 33호 가수일 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톱10에 들어 자신의 이름으로 노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자기 이름을 걸고 뭔가를 한다는 게 저런 거구나, 누군가에겐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일이 저토록 간절한 바람이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명함을 갖는다. 명함엔 이름이 나와 있고 속한 곳이 나와 있다. 입사를 해 처음으로 명함을 받아 들면 감격스럽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데다 호시탐탐 ‘시간의 이빨’이 작용해 감격스러움은 사라지고 모든 게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다 여긴다. 또 회사와 동료들 덕분에 이룬 일을 자신의 성과라 착각하기도 하는데 이런 시간이 계속되면 위험하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날 조직 밖으로 나오면 뜻밖에도 자신이 할 줄 아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현타’가 올 테니.

한창 실무자로 일하던 때 내 마음속엔 이런 생각이 있었다. 회사 ‘레떼루’(상표) 떼고 내 이름 석 자로 통하겠다고. 그때는 ‘부캐’(부캐릭터)도, 퍼스널 브랜딩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이지만 회사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설 수 있어야 회사 내에서도 단단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 그래야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오래도록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발견한 영업 비밀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한편 ‘이름을 걸고 일하기’를 액션 플랜으로 삼았다. 이름을 건다는 것은 끝없이 애쓰고 무릅쓰는 일이었다. 하기 싫고 귀찮고 힘든 일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간혹 클라이언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는데 아이디어가 후지다는 말보다 더 아팠던 말은 성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내 이름은 남루하게 느껴졌고 부끄러웠다.

이름을 걸면 애쓰게 된다. 그러므로 이름을 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경쟁에서 이기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지기 위함이다.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게 되고 그런 노력이 모여 다시 이름을 만든다. 그러니까 어디 큰 조직에 속해 있더라도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름을 걸고도 실패할 수 있지만 그런 실패엔 후회가 남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므로 부끄럽지 않다. 아직 실력이 모자라니 더 애써 보자라고 긍정적으로 자신을 독려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궁금해진다. 당신은 이름을 걸고 일하고 있는가? 만약 회사를 위해 일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어서 생각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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