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홍수용]무책임한 GTX 공약

입력 2022-01-28 03:00업데이트 2022-01-28 11:12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경기 파주시에 짓는 한 아파트 명칭은 ‘GTX운정역 ○○단지’다. 파주 동패동에 2024년 들어서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역에서 가까운 듯하지만 실제 아파트와 역 사이는 차로 10분, 걸어서 1시간 거리다. ‘역 반경 500m’라는 역세권 개념으로 보면 다소 과장이지만 GTX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건설사가 그 관심을 영업에 활용하는 걸 사람들이 대개 알고 있으니 마케팅으로 큰 효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GTX역 가까이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희망에 편승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7일 기존 GTX 3개 노선을 연장 확대하고 새 노선 2개를 신설하는 방안을 밝혔다. 이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비슷한 구상을 내놓았다. 신설 노선의 세부 정차역이 다를 뿐 지난해 ‘김부선(김포∼부천)’ 논란이 일었던 GTX D노선을 서울 강남과 직결시키는 등 두 후보 모두 지역의 오랜 염원을 다 들어줄 것 같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국 GTX의 모델 격인 영국 크로스레일은 서쪽 레딩과 동쪽 셰필드 118km 구간을 잇는 철도다. 우리 GTX 2개 노선을 합한 것보다 짧지만 완공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땅 밑 40m에서 기차가 시속 160km로 달리게 하는 사업은 돈이 문제지만 돈만 있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GTX를 신설하려면 5년마다 수립하는 10년짜리 국가철도망 계획에 새 구상을 반영해야 한다. 지난해 10년짜리 계획을 확정했으니 신규 계획 수립까지는 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GTX는 긍정적,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내는 인프라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서울 도심까지 가기 쉬워지는 반면 수도권 집중이 심해지고 경기 지역이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수 있다. 교통 인프라 개선으로 해당 지역 부동산시장이 주목받지만 모처럼 안정세를 보이는 집값을 자극할 우려도 있다. 특히 GTX는 역과 역 사이 거리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거점 간 이동시간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중간중간 정차역을 계속 늘리는 식으로는 급행철도가 아닌 완행철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후보들이 GTX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초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거리낌 없이 추진하면서 나랏돈 쓰는 일에 더 이상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GTX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균형발전 같은 정치적인 고려를 하되 편익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준만은 지켜졌다. 지금은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면서 공약이 과대 포장됐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는다. 대선 공약이 아파트 분양 마케팅 수준이 되고 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