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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진심보다 결과[임용한의 전쟁사]〈196〉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2-01-18 03:00업데이트 2022-01-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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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31일, 새해를 앞두고 중공군이 3차 공세를 감행했다. 유령군대라는 표현처럼 중공군은 30일 참호 안에 은신해서 공격을 준비했다. 볼일 보러 참호 밖에 나가는 것도 금지했다. 이 공세로 임진강 전선이 돌파당했고, 유엔군이 서울 남쪽으로 밀렸다. 우리 기억에 생생한 1·4후퇴가 이 공세의 결과물이다.

이틀 전인 12월 29일, 압록강을 목전에 두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임진강까지 밀려 내려오자 미국 합참에서는 6·25전쟁은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다. ‘유엔군은 중공군을 이겨낼 힘이 없다. 유엔 회원국에 더 이상의 병력 증원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국 지형은 우리에게 불리하다. 미국은 이 이상의 지상군을 파견할 수 없다. 미국은 세계대전이 날 수도 있는 도박을 한국 땅에서 벌일 수 없다.’

합참은 맥아더에게 일단 금강 방어선까지 후퇴해서 중공군을 막아 보라고 말한다. ‘금강 방어선까지 붕괴하면 우린 일본으로 철수한다.’

맥아더는 극도로 분노했다. 강경한 어조로 미국은 한국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썼고, 극단적인 수단까지 언급하면서 중공군을 방어할 수 있고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지성계에는 지금도 6·25전쟁 참전은 잘못이었고, 미국의 젊은이들이 불필요한 전장에 가서 피를 흘렸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맥아더가 언급한 극단적인 수단을 조롱조로 비웃는다. 맥아더는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병에 걸린 그가 패배라는 치욕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이런 말 안 되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합참의 인사들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유엔군은 3차 공세에 밀렸지만 버텨냈고, 4차 공세를 쳐서 밀어냈다. 전쟁 포기라는 주장이 한 달 만에 사라진다. 맥아더의 진심이 무엇이었든 간에 대한민국은 그 덕을 보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진심이 아니라 결과다. 그게 국제정치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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