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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김선미]‘지옥’

입력 2021-11-27 03:00업데이트 2021-11-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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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 가디언은 어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K드라마 ‘지옥’을 새로운 ‘오징어게임’이라고 부르는 일이다. 폭력적 죽음을 다룬 K드라마라는 공통점으로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신문은 지옥이 오징어게임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오징어게임이 의상 등의 장치로 부모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면, 지옥은 보다 어둡고 복잡해 앞으로 10년 동안 회자될 수작이라는 것이다.

▷개봉 하루 만인 20일에 넷플릭스 드라마 1위에 오른 이후 21일 하루 빼고 줄곧 정상을 지키고 있는 지옥은 지옥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을 다룬다. 갑자기 “너는 몇 날 몇 시에 죽는다”는 ‘고지’를 받는 것은 납득하기 억울한 불행이다. 다른 사람들이 고지대로 죽는 것을 보면서 우주적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종교의 권위를 빌려 강요하는 장면은 섬뜩하다.

▷지옥에는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예고된 지옥행의 시간에 괴물에게 희생당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VIP들이 가면을 쓰고 지켜보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에서도 가면을 쓴 VIP들이 게임 참여자들의 죽음을 희희낙락하며 관전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평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 인간들은 필요에 따라 신(神)을 소환한다. 오징어게임의 한 참여자는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서만 “신이 준 기회”라 했고, 지옥의 교주는 “신의 의도는 명확하기 때문에 너희(인간)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옥의 특징은 ‘하이브리드’다. 연상호 감독은 2000년대 초반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두 개의 삶’을 바탕으로 2019∼2020년 같은 이름의 웹툰을 연재하더니 이걸로 다시 드라마 지옥을 탄생시켰다. 지옥 시즌2도 만화부터 선보이겠다고 한다. B급 감성(CG로 나타낸 지옥사자)과 철학적 대사의 만남도 독특하다. 공권력이 약하게 처벌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죽여도 되는지, 공포가 아니면 무엇이 인간을 참회하게 하는지 묻는다. 권선징악은커녕 선악의 구별에서 벗어난 세계관이 희망 없는 미래를 부각시킨다.

▷지옥에서는 사람의 목숨 값을 30억 원으로 매기고 저승사자로부터 죽어가는 과정을 지상파 방송들이 생중계한다. 코로나19, 가짜뉴스와 유튜버가 선동하는 확증편향과 갈등 조장 등 인류를 고통과 불안에 빠뜨리는 지금의 상황이 어쩌면 잿빛 ‘지옥’이다. “뜯겨 죽을까 봐 무서워서 선하게 사는 걸 정의라고 할 수 있나요? 죄인들이 무책임한 안락을 누릴 때 선한 자들만 죄의 무게를 떠안아요.” K드라마 ‘지옥’이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이 더 드라마 같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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