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걷는 시간[동아광장/김금희]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입력 2021-11-10 03:00수정 2021-11-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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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이 떠난 뒤 일흔 엄마와 부산행
가끔 다투더라도 엄마와의 여정은 계속될 것
많이 걸으며 서로 삶의 오랜 목격자가 되길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오랫동안 기르던 반려견이 떠난 뒤 엄마와 자주 어디를 다니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부산을 함께 갔다. 부산행은 엄마에게 남다른 의미였다. 십 대의 엄마가 꿈을 위해 나가본 대도시였고 아이들을 낳고 길렀지만 결국 생계를 위해 떠났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향과 자기 가족을 떠난 사람의 모습, 새로운 도시에 살면서도 지우지 못하는 이주(移住)의 감각은 엄마에게서 늘 선명히 느껴졌다. 그 불안과 슬픔은 아마 내게도 일렁이는 파도를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부산으로 가기 전 엄마는 십 대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는 것이었다. 부산역 바로 앞이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나와 보니 허리까지 잠길 정도로 홍수가 나 있었다고. 그 물살을 헤치고 나와 이모네 집 다락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나는 엄마와 자주 대화를 나누는 편이어서 그 이야기를 왜 지금에야 할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의 실패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결국 기술을 익히지 못해 자격증을 따지 못했고 공장 취직을 선택했다고 했다. 깊은 물살을 헤쳐서 돌아온 어느 여름밤, 결혼한 언니네 다락방으로 올라가야 했던 십 대 아이가 맞닥뜨렸던 실패는 얼마나 선득한 추위로 기억되었을까. 누가 들을까 숨죽여 울었던 밤은 오늘에야, 오랜만에 가는 부산 여행을 앞두고 말로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부산이 실패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출퇴근 시간이면 버스 수십 대가 서서 청년들을 태우고, 삼교대로 공장이 돌아갔다며 엄마는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설명했다. 물론 그건 아주 오래된 기억, 내 세대들의 체감과는 먼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좁은 반경의 체감에 갇히지 않기 위해 타인과 대화하고 책을 읽고 감정과 이해를 동원해 그것을 ‘실감’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간 것이 아니라, 부산에서 다시 부산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해서 간 여행은 의미심장했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으레 있는 여행지의 기억을 만들어가며 흘러갔다. 예약한 숙소는 막상 가보니 어떠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어도 취소되어 있었다. 다행히 방이 남아 있어 금세 해결은 됐다. 엄마는 기억 속 초량 시장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 했다. 인터넷에서 야시장 정보도 봤다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이모를 만나고 돌아온 뒤 우리는 함께 부산역에서 초량동으로 걸었지만 떠들썩하고 화려한 야시장 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팬데믹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면서도 아쉬워했다. 그러는 동안 가족들의 크고 작은 갈등들이 대화 속에 떠올랐다가 쓸쓸히 사라졌다. 여행지에 가서 마음이 일상에서 놓여나면 으레 그렇듯 깊은 속마음의 상처가 드러나지만 그것을 치유할 방법을 당장 찾지 못하는 것도 여행지의 엄연한 한계였다. 그래도 엄마는 다리 위에서, 부산 명물인 곰장어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나중에는 부산역 앞에서 마스크를 잠깐 벗고 웃으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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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잘 지내다가 다음 날 서울역에 도착해 다투고 말았다. 욕심을 부려 샀던 생선들 때문이었다. 엄마는 굳이 그 짐을 들겠다며 고집을 부렸고, 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일층이 아니라 한적한 위층에서 점심을 먹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짐을 들고 올라가다가 화를 냈고 나는 나대로 억울한 면이 있어 참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냉랭했던 우리는 비빔밥이 나오자 삭삭 비비면서 그래도 화해를 모색했다. 엄마는 나와 다니기 위해 공원을 걸으며 체력을 기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십 분만 걸어도 몰라보게 달라져 있을 거라고 열렬히 호응했다.

그런데 그 밤, 나는 엄마에게 변화만 요구한 듯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나이 들면서 나는 엄마를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 여겼고 걱정도 늘어났던 거였다. 반면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 짐을 들겠다고, 할 수 있다고 장담했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흘러가버린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크고 엄마가 먹고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동안 지나간 시간과 그것이 일으킨 변화. 가족의 막내라고 여겼던 반려견이 떠난 뒤 우리는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프게 체감했다. 그러니 가끔 다투더라도 엄마와의 여정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자주 듣고 많이 걸으면서 서로의 삶의 오래된 목격자가 되는 일, 그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중요한 책무처럼 느껴지니까.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반려견#엄마#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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