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에 열광하는 젊은이들[2030세상/박찬용]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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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칼럼니스트
박찬용 칼럼니스트
“미드십 수동으로 갑니다.” 오랜 지인의 메시지에 일요일 늦잠에서 깼다. ‘미드십’은 자동차 엔진을 차량 중간에 배치했음을, ‘수동’은 수동 변속기를 뜻한다. 엔진은 자동차의 무게중심에 관여하기 때문에 미드십이 주행에 이상적이고, 수동 변속기 역시 여전한 운전 재미가 있다. 전기차가 보급되어 주유소가 사라지기 시작한 이 시대에 지인은 이런 차를 사기로 했다.

“이런 차는 다시 안 나올 거예요”라는 말을 덧붙인 지인은 사실 보통 이상으로 신기술에 환하다. 각종 첨단 장비에 두루 지식이 있고, 신형 가전제품도 적극적으로 쓴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차를 산 것이다. 터보 등 과급 장치가 없는 자연 흡기 엔진에, 옛날 방식의 수동 변속기가 장착된 차는 이미 나오지 않는 추세다. 가치를 인정받는 자동차는 일정 시점을 넘어가면 가격이 올라간다. 실제로 다른 지인은 자신의 희귀한 자동차를 최근 웃돈 받고 팔았다고 했다.

효율과 효용이 다한 20세기 기술이 감성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다양한 개인용 취미 기계 분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음향 재생 기계도 마찬가지다. 요즘 일부 젊은이 사이에서는 카세트테이프가 유행이다. 빈티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파는 가게의 제품은 으레 품절되고, 카세트테이프를 많이 파는 가게들이 기사에 소개되고, BTS도 카세트테이프를 발매했다.

사람의 감성을 노리는 패션은 더하다. 사실 이제 가죽의 실질적 쓸모는 별로 없다. 가죽보다 더 튼튼하고 가벼운 소재가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죽 제품이 나온다면, 가죽 특유의 느낌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고가 시계는 감성을 건드리는 기술의 완벽한 예다. 시간을 정확히 보여주는 기술은 개발이 거의 끝났다. 100년 전에는 사회 지도층도 가지지 못했던 정확한 손목시계를 이제는 동네 마트에서도 살 수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홀린 듯 고가 시계를 사고, 애호가들은 기계식 시계의 여러 면모를 공부하듯 즐긴다.

20세기 기술이 21세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경향은 젊은 사람들에게 더 도드라지는 듯하다. 지난 세대 사람들에게 오래된 물건이란 추억 혹은 고물일 뿐이었다. 반면 젊은이에게 20세기의 물건은 본 적 없던 시대의 하이테크다. 멀쩡히 작동하는 유물 같은 것이다. 자동차, 오디오, 종이 잡지, 필름 카메라, 모두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팔려나간다. 요즘 젊은이들은 애플 워치를 차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옛 기술과 새 기술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한다.

신기술과 옛 기술의 공존은 하다못해 이번 올림픽에서도 이어진다. 올림픽의 각종 시간 기록은 전문 노하우와 전용 설비가 필요한 업무다. 스위스의 스포츠 시간 계측 전문 회사가 매번 진보한 시스템으로 시간 계측 일체를 진행한다. 올림픽 육상 종목 등의 마지막 바퀴에서 치는 종인 ‘라스트 랩 벨’만 변함이 없다. 이 종은 아직도 스위스 라쇼드퐁 지역에서 직원이 한 명뿐인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쇳물을 녹이는 일에서 시작해 옛날 방식으로 만든다. 그 종소리가 여전히 전 세계에 울린다. 나는 그 종을 볼 때마다 옛것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음을 실감하곤 한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옛것#열광#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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