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여름[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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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앓는 이십년지기 반려견 장군이
오랜 시간 내 곁을 지킨 소중한 존재
처음 만나 눈뜨게 된 사랑과 행복은 축복
이 여름을 함께 통과하는 일도 다르지 않길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지난주 열여덟 해를 함께해 온 친구가 집에 머물다 갔다. 나의 반려견 장군이다. 2000년대 초반 태어난 장군이는 사람들이 나이를 들으면 깜짝 놀랄 만큼 살았다. 내가 이십 대에서 사십 대가 될 때까지, 출판사 편집자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첫 책을 내고 이후 아홉 권의 책을 낼 때까지 함께한 것이다. 나와 직장 생활을 함께한 지인은 지금 말하는 장군이가 그때 장군이가 맞느냐고 묻기도 했다. 세상에 강아지가 이십 년 가까이 살다니, 수의사는 사람 나이로 치면 백이십 살인 셈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장군이는 지금 말 그대로 ‘늙음’을 앓는 중이다. 몸이 천천히 굳어 더 이상 서지 못하게 되었고 시력도 보이지 않으며 검사를 해보면 각종 수치가 위험을 뜻하고 있다. 음식을 씹지 못해 사료를 갈아서 먹이는데 이마저도 삼키기가 어려워 호흡이 곤란해지곤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돌보고 살피며 지낼 수 있지만 뇌 이상으로 밤에도 내내 자지 않고 짖거나 우는 게 가장 식구들을 지치게 한다. 지난주에 우리 집으로 잠시 데리고 온 것도 몇 달이나 제대로 밤잠을 못 잔 엄마를 쉬게 하기 위해서였다.

종종 가서 들여다볼 때와 아예 생활을 같이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몸은 마음을 따라주지 않지만 아직 자신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는 않은 장군이는 요의를 느낄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우라고 짖었고 그건 밤이나 새벽이나 마찬가지였다. 몸이 좋지 않으니 깊은 잠을 잘 수 없고 항생제를 처방받고 있어서 더 자주 요의를 느끼는 것이었다. 문제가 아닐까 싶어 수의사에게 물으니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제를 오래 쓰면 부작용이 있지만 장군이 경우에는 그걸 따질 상황은 아니라고 답했다.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에 강아지가, 음, 강아지가, 떠날 확률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수의사는 그 설명을 하면서 망설이며 말을 골랐고, 뒤이어 여러 번 병원에서 들었던 말, 이만하면 오래 살았다는 말,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는 말이 붙었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최선이라는 위무가 가능할까. 세월이 흐르면 흐른 만큼, 함께한 존재들은 서로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열여덟 해는 상실감을 보전해줄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 더 무겁고 아픈 숫자가 아닐까.

장군이가 와 있는 동안 마루에 이불을 펴고 생활했다. 작업이나 독서 같은 일상이 멈추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픈 반려동물을 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를 드나들며 노견에게 좋은 물품과 영양제를 알아보고 사연들을 읽어보는 것도 새벽마다 내가 한 일이었다. 지금 장군이가 겪고 있는 증상과 비슷한 경우도 많았고 그렇게 늙어가는 반려동물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과 슬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원망의 글도 자주 올라왔다. 집에 있는 이런저런 물품들을 나누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때로는 뜯지 않은 새 상품이기도 했다. 채 사용하기도 전에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것이었다.

첫날과 둘째 날에는 나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기도 했다. 우리에게 그런 날들, 그러니까 공원을 힘차게 산책하고 마룻바닥을 몸으로 멋지게 쓸며 공을 물어오고 잠시 헤어졌다 만나면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며 반가움을 표시했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과거가 너무 또렷하고 생생해서, 아직도 그런 장군이의 모습을 놓을 수가 없어서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나는 그 모든 상념들이 정작 장군이와 보내는 이 여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할 이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내 곁을 지켜준 나의 개는 어떤 모습으로든, 여전히 내 곁에 있다. 나보다 먼저 늙음을 겪으며 지금도 내게 삶의 어느 장면을 펼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 장군이를 만났던 이십 대 시절에 나는 지금보다 더 마음이 메마르고 차갑고 세상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 존재가 놓임으로써 비로소 눈뜰 수 있었던 사랑, 평화, 행복, 세상의 아름다움과 따뜻함은 기르기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축복이었다. 그러니 이 여름을 통과하는 일 역시 그런 의미에서는 전혀 다를 게 없는 시간이 아닐까. 너와 나의 여름은 이 절정의 더위처럼 생생하게 계속되고 있으니까. 아직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반려견#장군이#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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