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금희]그렇게 계속되는 ‘혁신’의 날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입력 2021-05-26 03:00수정 2021-05-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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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가능할 정도의 작은 변화
황혼의 부모님이 찾은 삶의 혁신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어려서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얼리어답터적인 기질이 있는 분이셨다. 맞벌이를 해야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는, 여유롭다 할 수 없는 형편 속에서도 종종 새로운 전자제품들을 들이곤 하셨으니까. 물론 그런 제품들을 마니아적으로 소비하는 요즘 스타일은 아니었고, 과학기술 시대에 그런 상품들의 조력 없이는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다분히 선진적인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아버지는 개인용컴퓨터(PC)가 막 일반에 공급되던 1990년대 초반, 컴퓨터를 사서 내게 안겼다. 그즈음 우리 동네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몇 되지 않았고 나는 그걸 가지고 뭘 해야 하는지 좀 당혹스러운 느낌이었다. 근처에 컴퓨터 학원이라는 곳이 생겼다고 해서 참관을 가보면 도형자로 프로그램 흐름도를 그려보면서 다양한 원주율의 원을 컴퓨터로 지루하게 생성시켜 보는, 나로서는 큰 흥미가 일지 않는, 수업을 할 뿐이었다. 컴퓨터 게임에도 별 관심이 없어 한글 프로그램으로 열심히 타자 연습이나 하던 열세 살의 나는 어느 날, 이 기계가 긴 글을 쓰기에 너무나 편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후 아버지는 아주 이른 시기에 휴대전화를 개통해서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그 휴대전화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디자인이었다. 약간 과장하자면 벽돌과 무전기를 합쳐 놓은 듯하달까. 묵직한 몸체에는 송수신을 위한 가냘프고 앙증맞은 안테나가 달려 있었고 그것을 통해 어디에 있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디자인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 무렵 마침내 자신만의 업체를 가지게 된 아버지의 자부를 보여준다고는 느꼈다. 그리고 뒤이은 아버지와 나의 삶을 생각해보면 우리를 다양하게 거쳐 간 각각의 휴대전화들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도 나도 마치 경주하듯 여러 번 휴대전화 기기를 바꿨고 떠올려보면 그건 생의 중요한 변곡점들과 맞물려 있었으니까. 그러다 스마트폰이 공급될 무렵, 아버지는 더 이상 새로운 전자기기의 세계로 나가지 않고 2G 폰의 세계에 남았다. 자영업자로서의 여러 시련과 실패가 아버지의 삶을 관통하고 난 뒤였다.

신제품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가 더 이상 그런 것들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 그를 통한 변화의 순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건 나로서는 어떤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사들였던, 그렇게 해서 내 삶에도 일종의 ‘전환’이 일어났던 그 부지런한 혁신의 날들은 다 가버리고 만 것일까. 엄마가 스마트폰에 완전히 적응해 이제 통화보다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를 더 애용하고 요리 레시피를 웹으로 찾아보곤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노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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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 예약을 앞둔 어느 날, 아버지가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하러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깐 외출할 때 말고는 전화할 일도 없다며 우리가 권해도 듣지 않던 아버지가 왜 갑자기 새로운 기계에 관심이 갔을까 싶었다. 이제 아버지와도 문자메시지로 더 많은 얘기를 하거나 화상 통화를 하게 되는 것일까. 수십 년간 신문을 구독하며 그것을 통해 세상을 읽고 인터넷상의 숱한 영상매체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라이프스타일이 드디어 바뀌는 것일까.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지금 전화기보다 조금 더 기능이 추가된 새 폴더폰으로 바꿔 돌아왔다. 나중에 여쭤보니 백신 예약을 앞두고 혹시 문제가 있을까 싶어 바꿨을 뿐이라는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낡은 휴대전화 상태가 사실 아버지도 좀 불편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 말이 좀 의아하게 들리다가 나중에는 동의하게 됐는데, 아버지 세대들에게는 백신 접종이 우리보다 더 중요하고 절박한 일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전환을 꿈꿔 볼 수 있는 체감적인 변화였던 것이다.

어버이날, 아버지와 나는 온라인으로 백신 예약을 했다. 그것은 내 스마트폰과 아버지의 폴더폰 모두가 필요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서로 시간차를 두고 백신을 맞겠다고 했다. 두 분 다 되도록 빨리 접종하는 게 낫다는 내 의견과는 달랐다.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간격을 둬야 해.”

그 말은 한 명이 백신을 맞고 만일 몸이 안 좋으면 다른 한 명이 돌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조심스러움이 어떤 애잔함과 함께 마음 깊이 남았다. 앞으로 찾아들지도 모를 어려움을 최대한으로 예상하고 그것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것, 모두 바꿔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용 가능할 정도로만 변화시켜 보는 것. 그 역시 황혼의 부모님이 찾은 삶의 ‘혁신’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아버지와 나는 백신 접종 이후의 미래를 기다려보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으로, 어쩌면 나 또한 그런 아버지에게 여전히 배워 나가는 방식으로.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황혼의 부모님#삶#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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