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금희]나의 특별한 선생님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입력 2021-04-28 03:00수정 2021-04-2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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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바다에서 발견한 생명과 대자연
매 순간 다음 선택 고민하는 문어…기쁨을 위해 움직이는 아름다운 영혼
인간성은 자연의 일원들과 나눈 것 일깨워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산문가이자 독서 팟캐스트 진행자인 김하나 작가와 행사를 함께 했다. 주제는 고 박완서 선생님 작품에 대한 이야기였고 북토크를 진행하는 내내 선생님 작품에서 느꼈던 감동과 경이가 이어졌다. 행사가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김하나 작가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화제는 영화로 옮겨갔고 주로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내 말에 김하나 작가는 ‘나의 문어 선생님’(2020년)이라는 영화를 권했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먹먹한 감동을 주는 훌륭한 영화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김하나 작가의 추천이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좀 이상한 질문을 했는데 “그런데 그거 보면 문어 못 먹게 되나요?” 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누비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자신의 삶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자괴감에 휩싸인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유년을 보냈던 남아프리카 웨스턴케이프를 다시 찾는 것. 길게 뻗었던 촉수를 거둬들이듯 그는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이미 세월이 지나 고향은 모든 것이 변하고 그대로인 건 다시마 숲이 있는 거친 바다. 그는 혼자 그 바다에 잠수해 들어가기 시작하고, 어느 날 천적을 따돌리기 위해 조개껍질을 잔뜩 그러모아 변장하고 있던 문어 한 마리를 만난다.

이후 화면을 채우는 것은 내내 짙고 푸른 바다, 그 안에서 일렁이는 다시마와 해초들, 문어와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산소통 없이 헤엄치는 남자의 실루엣과 주어진 수명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문어 한 마리다. 숱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남자는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 특별한 감상을 가진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그에게 자연의 질서란 엄정하고 절대적인, 그렇게 해서 순환이라는 반복된 흐름을 만들어내는 불변의 원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살아가다 깊은 우울과 무기력 속에 이탈해버린 남자는 이 우연한 문어와의 만남을 통해 자연을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 시선으로 지켜본 문어의 삶에는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들이 동일하게 발생한다. 낯선 것에 끌리고 애착을 느끼며 무언가를 믿거나 혹은 불신하고, 천적인 상어에게 몸을 물어뜯긴 뒤에는 동굴 속을 겨우 찾아들어가 새 팔이 날 때까지 조용히 시련을 감내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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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동안 내게는 문어가 이른바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현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문어는 ‘물리적’ 몸체가 없는 연체동물이고 생존의 무기라고는 ‘지능’밖에 없으니까. 무척추동물 중 가장 뛰어난 그 지능으로 문어는 몸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천적을 따돌렸고 매 순간 자신의 다음 선택을 ‘고민’했다. 남태평양 깊은 바다에서 모래로 산호초로 조개더미로 시시각각 존재를 바꾸는 문어를 보고 있으면, 매 순간 변화하는 우리의 지각이나 감정, 사유의 상태 같은 것이 연상되었다.

영화를 보고 친구와 대화해 보니 일 년 남짓한 문어 이야기에서도 인상적으로 남은 장면이 달랐다. 친구는 남자와 문어 사이에 교감이 일어났던 부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 깊은 바다로 들어온 고독한 인간에게 인사를 건네듯 문어가 뻗어주었던 긴 팔. 어디 갔다가 이제 고향에 돌아왔니? 혼자 돌아오는 길이 괜찮았니? 하고 묻는 듯한. 내가 황홀하게 바라봤던 장면은 어느 날 수면 가까이 떠오른 문어가 물고기 떼를 일부러 훑으며 장난을 거는 대목이었다. 생존을 위해 먹이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자기 팔에 놀라 흩어지는 물고기 떼를 보고 느끼려는 목적이었다. 수중까지 들어선 햇빛 아래 춤추듯 긴 팔을 흐느적거리다 온몸을 찬란하게 펼쳐 보이던 문어의 모습. 나는 그렇게 즐거움과 기쁨을 위해 움직이는 영혼이 아름다웠고 눈물이 고였다. 우리의 인간성이라는 것은 사실 유일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원들과 나눠 가진 것에 불과하다는 진실이 그렇게 전해졌다.

문어와 한 남자만의 이야기로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는 이 영화는 어쩌면 하나의 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바닷속 다시마 숲으로 기꺼이 잠수해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자연이라는 특별한 선생님에 대한 특별한 시. 작가로서 존경해 왔던 박완서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돌아오는 밤 알게 된 이 영화를 나는 그렇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섬기는 대상이 있다면 누구나 조용히 침잠해 들어가 발견할 수 있는 그 특별한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이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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