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운]사람과 문화재의 공존이 코로나시대 힐링 선사한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입력 2021-04-26 03:00수정 2021-04-26 03:37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김상운 문화부 차장
며칠 전 점심식사를 빨리 마치고 회사 근처 경복궁에 갔다. 너른 풀밭과 색색의 꽃잎 사이로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멀리 고운 한복을 입고 손을 맞잡은 젊은 커플이 보인다. 옛 왕들이 주연을 베풀었을 경회루(慶會樓)에는 늘어진 버드나무 옆으로 조그마한 목선(木船)이 떠 있다. 순간 주변 시간이 잠시 멈추는 듯했다. 오전 내내 머리를 휘감은 근심거리도 증발했다.

바야흐로 ‘문화재 힐링’의 시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지친 이들이 궁궐로, 왕릉으로 휴식을 찾아 떠난다. 특히 조선 궁궐이나 왕릉은 서울 시내 도처에 자리 잡아 접근성이 뛰어나고 탁 트인 야외공간에 있어 감염 우려도 작다. 코로나 시대에 알맞은 힐링 방법인 셈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인해 가을로 연기된 궁중문화축전에 인원 제한에도 불구하고 1만3000여 명이 4대 궁궐을 찾았다.

비단 거창한 궁궐에서만 힐링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배우 윤여정이 출연한 TV 프로그램 ‘윤스테이’를 촬영한 전남 구례군 쌍산재(雙山齋)가 대표적이다. 200년 된 고택과 지리산 풍광, 100여 종의 수목(樹木) 정원이 어우러진 이곳에 지난해에만 3만6000여 명이 방문했다.

주변 문화재들이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는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아쉬운 대목이 있다. 이들이 사람과 ‘분리’돼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멋들어진 경관을 자랑하는 경복궁 경회루는 누각이라기보다 외딴 ‘무인도’에 가깝다.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 아래 1년 중 정해진 기간에 소수의 인원만 관람할 수 있어서다. 주변 전각들도 마찬가지다. 광복 후 복원된 전각들에도 빗장이 걸려 있다. 사람이 생활하지 않는 화석화된 공간 그 자체다.

주요기사
잠긴 전각을 바라보면서 수년 전 취재차 방문한 이탈리아 문화부 청사를 떠올렸다. 로마시내 테베레 강가와 연접한 이 청사는 400년 된 고건축 문화재다. 17세기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의 조카가 보육원 겸 요양원으로 지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군 병영으로도 쓰였다. 1, 2층의 연속된 아치들과 아름다운 중정(中庭)이 중세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옥상에 올라가면 수백 년 묵은 나무기둥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깔끔한 현대식 인테리어로 개조된 사무실에서 공무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문화재와 사람의 공존은 서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경주와 비견되는 고도(古都)인 중국 시안(西安)에선 성벽 주변 전각들을 전망대나 상점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각에서 내려다보는 시안 성벽의 위용은 밖에서 올려다볼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닫혀 있는 서울의 광화문 문루(門樓)에서 내려다보는 경복궁 풍경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으리라.

문화재청은 2015년 창덕궁 내 일부 전각에서 숙박 체험을 하는 ‘궁(宮)스테이’ 프로그램을 추진했지만 당시 문화재 훼손을 우려한 야당(현 더불어민주당) 등의 반발에 포기했다. 목조건물의 화재가 우려된다면 전각 내부를 방염재로 리모델링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민들에게 최고의 힐링을 선사할 수 있는 문화재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사람#문화재#공존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