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유영]“월급 모아도 티끌” 주식에 빠진 청춘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21-03-30 03:00수정 2021-03-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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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회사원 최모 씨(36)는 자정이 다가오면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막 개장한 미국 증시에서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서다. 최근엔 암호화폐로 투자 영역을 확장했다. 오전 서너 시에 잠들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월급만 모아서 언제 집 사냐”며 “어차피 승진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친구 서모 씨(35)는 5년 가까이 일정한 직업이 없다. 시간은 많으니 10분 간격으로 주식 앱을 들여다보며 투자한다. 돈이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한다. 연애는 하지만 결혼 생각은 없다. 서 씨는 “결혼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버겁다”고 말한다.

직업이 있건 없건 전업 투자자처럼 주식 거래를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과거엔 전업 투자자라면 모니터 여러 개를 두고 골방에서 복잡한 차트를 들여다보는 사람을 떠올렸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투자할 수 있고 투자 정보 장벽도 낮아졌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젊은이가 전업 투자자일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절망감이 배어 나온다. 젊은층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로 집을 산다지만 영끌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끌할 종잣돈이 없는 이들에게는 주식 투자가 유일한 탈출구인 셈이다.

비혼과 비출산을 택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점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일찍이 해외여행을 다니고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법한 집을 보며 눈높이가 높아졌지만 앞으로의 소득이 빤한 상황. 하지만 다가올 생애주기에서 자신이 누리는 삶의 질을 더 끌어내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부의 상징이라는 조혼(早婚)과 다산(多産)의 대척점에 서서, 혼자라도 적게 벌고 적게 쓰면 된다고 여긴다. 그런 점에서 전업 투자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정서를 다르게 분출하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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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금리에 돈이 많이 풀려서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통화량(M2·광의통화)은 역대 최대 수준이 됐지만 이 돈이 실물경제에 얼마나 흘러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통화 승수(M2/본원통화)는 역대 최저다. 돈이 많이 풀려도 실물경제로 흘러들어 오지 못하고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고여 있다. 좋은 산업도, 좋은 직업도 나오기 점점 힘든 구조가 되고 있다.

근로소득이 아니어도 돈을 벌 방법은 많다.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집을 사기도 어렵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설문에서 소득 향상을 위해 중요한 수단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꼽은 응답자가 32.9%로 ‘업무역량 강화와 승진’(14.9%)보다 많았다.

하지만 ‘노오력’이 조롱받고 월급이 평가절하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회사원들이 월급 받는 걸 두고 ‘현금을 채굴한다’는 자조가 나온다. 어떤 이들에게는 회사가 종잣돈을 지급받는 ATM이 되어버렸다. 이는 개인에게는 일의 가치가 달라지고 기업에는 혁신 공식이 달라지고 국가에는 성장동력이 달라진다는 뜻일 수 있다. 산업구조가 날로 격변하지만 성장은 멈춰버린 ‘수축경제’ 시대에 전업 투자에 빠진 젊은이들의 희망과 절망, 냉소와 체념을 읽어내지 못하면 한국 경제에 미래는 없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월급#티끌#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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