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코로나가 끝나면…’ 상상의 음악 기행

임희윤 기자 입력 2021-03-26 03:00수정 2021-03-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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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라이프’지의 사진 현상 담당자인 월터(왼쪽·벤 스틸러)는 늘 상상 속에서나 용감해진다. 이를테면 짝사랑 상대 셰릴(크리스틴 위그)에게 다가가는 일까지도….
임희윤 기자
“저기, 저 흰색 띠는 무엇이죠? 지평선 너머 구름 위로 신기루처럼 떠있는….”

몇 년 전 어느 날 몽골의 고비사막. A의 물음에 현지 가이드 B가 덤덤하게 답했다.

“알타이산맥입니다.”

며칠을 서쪽으로 더 달린 뒤, A가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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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알타이산맥인가요?”

다시 답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덤덤했다.

“네. 이곳 몽골은 공기가 맑아 가시거리가 대단히 깁니다. 이곳에서 알타이산맥까지 거리는 서울에서 도쿄까지와 비슷하죠.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한강변에서 후지산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1. 확 트인 곳이 그립다. 며칠 전 음악업계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만약 코로나19가 당장 종식된다면 올여름 휴가는 어디로 가겠냐’는 즉석 자체 설문조사가 벌어졌다. 그리스, 아일랜드, 호주, 미국, 브라질…. 흐뭇한 상상에 입꼬리들이 올라갈 때쯤 내가 지인 A의 고비사막 일화를 풀자 몇몇이 관심을 표했다.

#2. A의 일화에 또 다른 지인 D의 에피소드를 보탰더니 일행은 당장 울란바토르행 항공편이라도 알아볼 태세다.

‘몇 년 전 몽골로 여행 간 D는 키가 한 2m쯤 되는 현지 남성과 사랑에 빠졌지. 과묵하지만 다정한 E와…. 초원에서 마두금을 연주하며 흐미(한목소리로 동시에 여러 음을 내는 몽골 전통 창법)를 부르는 칭기즈칸의 후예 E의 독창적 매력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나, 뭐라나.’

#3.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카페에서 한낮에 잠시 떠난 가상 세계여행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년) 못지않았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봄날의 햇살은 ‘시네마천국’의 영사기가 돼 줬다.

여행에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여행 갈 때 여권 다음으로 챙길 것은 이어폰이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의 가상 플레이리스트가 머릿속에 당장 그려졌다. 스포티파이의 인공지능도 추천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과 환상이 담긴….

#4. 첫 곡은 고비사막에서 멀리 알타이산맥을 보는 자연인 A의 시점에서 골라보자. 그렇다. 코로나19가 풀리고 경제적·심리적·시간적 여유까지 받쳐주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조지아나 아르메니아 같은 데 가보고 싶다. 아르메니아 재즈 피아니스트 티그란 하마시안의 연주곡 ‘Tsirani Tsar’(2016년)를 튼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마시안의 무대는 알타이도 고비도 아닌 아라랏 쪽이다. 성서 속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뒤 정박했다는 아라랏산이 굽어보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이다. ‘Tsirani Tsar’는 아르메니아의 사제이자 작곡가인 코미타스(1869∼1935)의 원곡을 재해석한 것. 아르베 헨릭센(트럼펫), 에이빈드 아르셋(기타), 얀 방(전자음) 같은 노르웨이 음악가들과의 합주가 이채롭다. 황야와 산맥을 허위허위 넘는 솜털구름만큼이나 고달픈 애수의 피아노 위로 스칸디나비아의 물안개처럼 서늘한 음향들이 올라탄다.

#5. 두 번째 곡은 내친김에 북유럽이다. 2018년 봤던 최고의 콘서트가 떠오른다. 노르웨이 서안의 옛 바이킹 수도, 베르겐에서 본 현지 포크 그룹 ‘바르드루나’의 공연이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요새이자 옛 왕궁인 베르겐후스 요새에서 노을 질 무렵 열린 그 콘서트는 중세 리라와 염소뿔피리, 고즈넉해 불길하기까지 한 제창이 여울지며 21세기 복지국가의 시공간을 일순 바이킹 시대로 되돌려놨다. 바르드루나의 ‘룬(rune) 문자’ 3부작 음반에 실린 ‘Helvegen’(2013년) 정도면 충분하겠다. 노르웨이 사람도 못 알아듣는다는 고대 언어 가사의 음울한 뉘앙스는 귀로만 들어도 충분히 뼛속 깊이 사무친다.

#6. 베르겐에서 한 번 더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포르투갈 중북부의 코임브라도 괜찮겠다. 리스본의 파두를 독자적 장르로 재해석한 ‘코임브라 파두’의 본고장. 코임브라대학 특유의 긴 교복 망토를 휘날리며 호세 알폰소(1929∼1987)의 구슬픈 세레나데 ‘Solit´ario’를 부르는 가수를 향해 달고 독한 포르투 와인을 들어 건배하는 내 상상 속 모습에 반하기 직전이다. 직장인의 환상은 늘 현실이 된다. 음악 속에서는…. 오늘도 이렇게 봄날은 간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코로나#종식#음악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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