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제2의 의료 인생 도전하는 교수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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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명의’로 이름난 권성준 강원 양양보건소장(전 한양대병원장)이 보건소 진료실에서 환자와 대화하고 있다. 양양보건소 제공
‘위암 명의’로 이름난 권성준 강원 양양보건소장(전 한양대병원장)이 보건소 진료실에서 환자와 대화하고 있다. 양양보건소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올해 초 서울대병원에선 유난히 많은 교수가 정년퇴임을 했다. 국윤호(미생물학과) 김기봉(흉부외과) 김희중(정형외과) 노동영(외과) 서정욱(병리학) 송영욱(내과) 신희영(소아과) 윤병우(신경과) 전용성(생화학) 하일수(소아과) 허대석(내과) 교수 등 11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환자 치료와 연구,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친 대학병원 교수 10여 명이 같은 해 정년퇴임한 건 의료계에서도 흔치 않다.

옛날 같으면 대학병원에서 은퇴하고 노후를 즐기는 교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다르다. 여전히 가운을 벗지 않고 ‘두 번째 의술’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유방암 분야의 명의인 노동영 교수는 강남차병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의료 인생을 설계 중이다. 2018년 서울대병원에서 퇴임한 심장질환 명의 오병희 전 교수는 인천 세종병원장을 맡아 왕성히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직접 개원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게 특징이다. 대학병원 때보다 더 가깝게 환자를 만날 수 있다. 2017년에 8월 퇴임한 정남식 전 세브란스의료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서울 서초구에 의원을 열어 심장혈관 환자를 진료 중이다. 대학병원의 경우 한 번 진료를 받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의원급에선 빠른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다. 정 전 원장은 후배들에게 새로운 은퇴 후 활동 모델을 보여주기 위해 개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성권 전 서울대병원 부원장은 2014년 퇴임 후 서울 종로구에 개원해 지금도 꾸준히 신장질환자를 돌보고 있다. 또 1주일에 한 번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를 4년째 환자들에게 보내고 있다. 신장질환과 먹을거리, 일반 건강정보 등의 내용을 e메일에 담고 있다. 김 전 부원장은 “정년 후에도 계속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사들의 ‘진료수명’이 늘고 있다”며 “마음 편하게 환자를 계속 진료할 수 있게 개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이 다른 중대형 병원장으로 가는 대신 개원을 선택하면 환자에게도 긍정적이다.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보다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년 후 지역사회에 들어가 공공의료를 펼치는 교수도 늘어나고 있다. 이종철 전 삼성서울병원 의료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2018년 고향이기도 한 경남 창원시의 보건소장을 맡아 지역주민을 위한 의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창원보건소는 지난해부터 경남 최초의 최첨단 치매 예방 로봇과 뇌 활성화 인지학습훈련 장비, 가상현실 장비 등을 도입해 정보기술(IT) 치매안심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 전 원장의 풍부한 경험 덕분이다.

지난해 퇴임한 권성준 전 한양대병원장은 올해 강원 양양군의 보건소장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대한위암학회장 등을 지낸 권 전 원장은 위암 수술을 3000건 이상 집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역사회에 부족한 의료 및 건강 관련 정보를 언제라도 쉽게 제공하기 위해 양양행을 택했다. 등산 마니아이기도 한 그는 설악산이 가까운 양양에서 새로운 의료활동을 펼치게 된 것에 감사해하고 있다. 허준용 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올해 정년 후 강원 인제군의 보건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건의료 정책의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인 교수도 있다. 한광협 전 세브란스병원 내과 교수는 간암 치료의 국내 최고 명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현재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한 원장은 “오랜 기간 쌓은 현장 경험과 연구 활동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더욱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다”며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행정업무 중복을 줄이고 부서 간 소통을 활성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정년을 맞은 허대석 교수도 한 원장과 함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함께 일할 예정으로 있다.

평생 한 분야에 매진하며 경험과 지식을 쌓고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의료현장을 지키는 교수가 늘어나는 건 고무적이다. 해당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긍정적이다. 이들이 공공의료의 빈틈을 메워주고 균형 잡힌 보건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국가 의료 시스템이 발전하고 국민이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의료 인생#교수들#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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