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이력서가 일으킨 소동… 결국 실력과 꿈만이 최선책[광화문에서/김동욱]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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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스포츠부 차장
김동욱 스포츠부 차장
3월은 20대에게 취업의 달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많은 기업에 이력서를 보낸다. 많게는 수십 통의 이력서를 보내기도 한다. 취업 경쟁은 스포츠라고 예외는 아니다. 유럽에서는 프로 입단을 위해 여러 구단에 수십 통의 이력서를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처음 축구공과 인연을 맺었을 때부터 프로 선수가 꿈이었던 그레구아르 악셀로드(39)도 그랬다. 어릴 적부터 프로 선수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던 그는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축구에 별 소질이 없었다는 것. 10세 때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축구 경기에 나섰다. 형편없는 실력을 보인 그에게 아버지는 “더 이상 축구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축구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프로축구 선수의 꿈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가짜 이력서’였다. 프랑스의 유명 프로축구 구단인 파리생제르맹(PSG) 2군으로 뛰고 있다는 가짜 프로필이 담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신문 기사에서 유명 선수의 기사에다 이름만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 스크랩해 홈페이지에 올렸다. PSG 유니폼 등을 입고 몰래 PSG 경기장에 잠입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일까지 했을까. 그나마 입단 지원을 했던 구단에 큰 피해는 끼치지 않았기에 처벌은 피할 수 있었다고 해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위조 행각이었다.

그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그가 이력서를 보냈던 영국 2, 3부 리그 팀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돌아온 건 낙방 소식뿐이었다. 2008∼200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불가리아의 CSKA 소피아에서 입단 제의가 오기도 했다. PSG의 선수라 여겼던 CSKA의 입단 제의를 받고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다. 하지만 CSKA 팬들이 PSG 팬들에게 그에 대한 문의를 하면서 진짜 PSG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 발각됐다. 계약은 취소됐다.

그 후로도 그리스 등 여러 나라 프로팀 문을 두드렸으나 그를 받아주는 팀은 없었다. “프랑스는 이력서로 사람을 판단한다. 내가 아무리 입단 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뛰어난 스펙이 없으면 소용없다.” 그가 해외 매체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가짜 이력서’ 소동에 대한 해명이었다.

가짜 스펙으로 어떤 꿈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게 그나마 소득이었다. 20대를 방황한 그는 30세 때 뒤늦게 캐나다 프로팀에서 1년간 진짜 프로축구 선수로 뛰었다. 허위 이력서 효과를 본 건 아니었다. 10년 넘게 꾸준히 실력을 연마하고 땀을 흘린 결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은퇴 후 그는 축구학교에서 어린 선수들을 조언하는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프로’라는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가짜 이력서’를 앞세운 그의 취업 도전은 결코 올바른 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연이은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뒤늦게나마 진정한 노력을 기울였기에 잠시나마 그토록 바라던 프로 유니폼도 입을 수 있었다. 어디서든 이력서 한 줄보다는 꿈을 향한 열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김동욱 스포츠부 차장 creating@donga.com
#가짜#이력서#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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