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공급 ‘공공 판타지’에 빠진 정부[광화문에서/김유영]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21-02-25 03:00수정 2021-02-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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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일전엔 공공임대를 강조했지만 이번엔 공공개발을 들고나왔다. 정확히는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공공 직접시행)으로, 올해 2·4공급대책에서 발표한 도심 공급 방안이다. 지지부진한 도심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은 공공이 토지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개발하겠다는 것으로, 사업 속도를 높여 아파트 공급 시기를 앞당기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8·4공급대책에서 공공과 민간이 함께 추진하는 방안으로 내놓은 공공재건축 및 공공재개발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우선 ‘용적률은 공공의 것’이라는 정부 뜻에 따라 늘어난 용적률 일부를 공공에 내줘야 하는 점은 공통된다. 다만 공공재건축과 공공재개발이 늘어난 물량 절반을 주로 공공임대로 채우는 것과 달리 공공 직접시행은 늘어난 물량 상당수를 공공 분양한다. 공공임대 위주 공급을 펼쳤던 정부가 ‘내 집 갖고 싶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늦게라도 읽고 분양 위주로 바꾼 건 바람직하다.

문제는 공공 직접시행으로 도심 아파트 물량이 얼마나 늘어날지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변창흠 장관은 “민간 호응이 좋다”고 했지만, 정작 재건축 단지들은 “민간 재건축을 추진한다”는 현수막을 보란 듯이 내걸고 있다. 공공 직접시행을 추진하면 오히려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자체 재건축이 힘들어서 공공재건축을 검토해 보겠다는 단지마저 조합원들이 공공 직접시행 개발에는 반기를 들었다. 사업이 조합원 의도와 다르게 추진되면 어떻게 하느냐 등의 우려다.

현금청산 규정도 논란거리다. 대책 발표일인 이달 4일 이후 집을 산 사람들은 해당 구역이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에 포함되면 나중에 아파트 입주권을 못 받고, 현금을 받고 주택을 처분해야 한다. 현금청산은 도심 외곽 신규 택지 지정에는 효과가 있지만, 땅 주인이 얽히고설킨 도심에 적용하는 건 좀 다른 문제다. 공공 직접시행 대상인지도 모른 채 집 산 사람은 집에서 쫓겨나가야 하고(사용권한 침해), 이미 해당 구역에 집을 가진 사람도 현금청산 우려로 집을 팔려 해도 팔지 못하는 상황(처분권한 침해)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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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현청’(현금청산)당할까 두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래서인지 2·4대책 발표 이후 다세대 다가구 밀집지에서는 매매 거래가 얼어붙었다. 감정가보다 낮은 금액을 현금으로 받고 집을 내줘야 하는 상황을 반길 사람은 없다. 오히려 공공 직접시행 가능성이 매우 낮은 신축 대단지와 강남 재건축 단지의 집값이 다시 오르고 있다. 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다시 한번 절망하고 있다.

수요에 맞춘 공급을 하려면 도심 외곽에서 변죽을 울릴 게 아니라 도심 아파트 공급이 필수다. 정부는 민간 재건축 규제 등은 그대로 놔둔 채 공공 직접시행이야말로 '확실한 혜택'을 주는 방안이라며 조합들이 여러 정비 방안 중 공공 직접시행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시장은 공공 직접시행을 혜택(benefit)이 아닌 리스크(risk)로 받아들인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저마다에게 각별한 땅문서 받아내기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사람들은 시장 원리에 따라 이익을 보장 받길 원하지 공공으로부터 이익을 배분받고 싶어 하진 않는다. ‘공공이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서울 아파트 공급 부족은 심화되고 부처의 명운을 건다 해도 서울 집값 안정은 힘들 수 있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서울#아파트 공급#공공 판타지#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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