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조급증’ 드러낸 백신 지원론[현장에서/권오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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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27일 외신기자 정책토론회에서 “코로나19 백신 물량이 남는다면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을 닫아둘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뉴시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27일 외신기자 정책토론회에서 “코로나19 백신 물량이 남는다면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을 닫아둘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뉴시스
권오혁 정치부 기자
권오혁 정치부 기자
“현재 시점에서 북한이 백신을 받겠다고 나올 가능성은 제로(0)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북한 지원 가능성을 잇달아 언급한 데 대한 한 대북 소식통의 반응이다. 이 소식통은 “2019년 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한국 정부에 대한 북한의 불신이 상당하다”며 “아무리 백신을 준다고 해도 대화조차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2019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남북 당국 간의 대화 채널은 물론이고 민간단체 간의 교류도 사실상 전부 차단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열린 8차 당 대회에서 우리 당국이 제안한 보건 협력에 대해 ‘비본질적 문제’라며 공개적으로 거부 입장을 보였다. 게다가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들을 남북관계 개선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런 가운데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달 27일 외신기자 정책토론회에서 “백신이 남을 경우 제3의 어려운 국가 혹은 북한에 백신을 제공할 가능성을 닫아둘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백신 확보 상황까지 언급하며 지난해 11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백신이) 좀 부족해도 부족할 때 나누는 것이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힌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통일부는 정 총리의 발언 다음 날 “정부 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지원 관련)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한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세부적인 검토조차 없이 고위 당국자들이 북한에 대한 백신 지원 발언을 한 것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2월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지만 우리 국민은 코로나19 백신을 언제 접종받을 수 있을지, 확보된 백신 물량은 충분한 건지, 부작용은 없을지 등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다. 우리 국민에 대한 구체적인 백신 접종 계획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쑥불쑥 제기되는 백신의 북한 지원론은 여러 전제를 덧붙였다고 해도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북한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

실제 지원을 고려한다면 대북 제재 저촉 여부에 대한 검토 등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2019년 초 추진된 타미플루 20만 명분 지원도 남북 간 합의에는 도달했으나 북한으로 약을 보낼 화물차량의 제재 면제 문제로 유엔사가 불허해 결국 무산됐다. 당시 북한 측은 약을 받기 위해 두 달간 개성에 머물다가 빈손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조급증으로 설익은 제안을 던지는 것은 여론의 반발과 함께 당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만 키울 수 있다. 국민적 공감, 한미 간의 조율, 북한의 호응이라는 3박자가 맞아야 남북 교류협력의 성사 가능성도 커진다. 임기 만료를 1년여 앞둔 현 정부가 조바심으로 무리수를 둔다면 결국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권오혁 정치부 기자 hyuk@donga.com


#대북#조급증#백신 지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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