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범죄, 여야 같이 나서라[현장에서/강경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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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권력형 성범죄 근절’ 법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권력형 성범죄 근절’ 법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강경석 정치부 기자
강경석 정치부 기자
“현행법과 제도로는 연이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성범죄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를 막을 수 없어 ‘권력형 성범죄 은폐 방지법’을 발표하고자 합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로 구성된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가 28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박원순·오거돈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엔 지자체장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의 성범죄를 조사하는 위원회 설치에 관한 법안을 새로 제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가기관이나 지자체가 소속 기관장의 성범죄 사건을 직접 조사하기 어려우니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21대 국회는 지난해에도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하겠다며 성범죄자의 피선거권을 제한하거나 소속 지자체장의 성범죄로 재·보궐선거를 하게 한 정당에 선거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법안 6건을 발의했다.

취지는 좋다. 문제는 실천이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회에선 ‘○○○ 방지법’을 통과시키며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아동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n번방’ 사태가 터졌던 지난해에는 성범죄자의 교사 임용을 막는 법안을 불과 일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정작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무원의 출마를 제한하는 법안은 단 한 번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 모두 “국민의 선택에 맡기면 된다”며 미지근한 반응만 보였다. 결국 이 법안들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논의조차 거치지 않은 채 모두 폐기됐다. 공무원, 군인, 경찰관, 교사 등 다른 직종에선 성범죄자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놓고, 정작 국회의원 자신들에게는 관대했던 것이다.

이번엔 어떨까. 국민의힘이 여권 지자체장들의 성범죄를 부각시키는 데는 4월 보궐선거까지 이 이슈를 활용하려는 속내가 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보좌관은 ‘권력형 성범죄 은폐 방지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한 법안 아니겠느냐”며 “실제 법안이 통과될 확률은 높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지난해 총선에서 탄생한 180석의 거대 여당을 설득하지 않고 국민의힘 혼자 어떤 법안도 독자적으로 통과시키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에 활용하기 위한 정쟁의 대상으로 접근하다 보니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진정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야는 그동안 각종 논란에 대해 들썩이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합의하기 어려운 사안임에도 ‘보여주기식’ 법안을 발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번엔 달라야 한다. 정치권이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할 진짜 의지가 있다면 여야가 마주 앉아 다른 직종과 같은 잣대로 성범죄자의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 출마를 제한하는 법안을 논의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선출직은 국민이 선택하면 될 일”이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강경석 정치부 기자 coolup@donga.com
#권력형#성범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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