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이 금지된 경기장[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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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맨시티)의 일카이 귄도안(오른쪽 뒤)이 27일 웨스트브로미치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득점한 뒤 동료를 끌어안고 있다. 맨시티가 5-0으로 이겼다. 최근 프리미어리그의 포옹 금지 조치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웨스트브로미치=AP 뉴시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맨시티)의 일카이 귄도안(오른쪽 뒤)이 27일 웨스트브로미치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득점한 뒤 동료를 끌어안고 있다. 맨시티가 5-0으로 이겼다. 최근 프리미어리그의 포옹 금지 조치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웨스트브로미치=AP 뉴시스
이원홍 전문기자
이원홍 전문기자
“뇌가 없는 듯한 모습이다.”

축구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골을 넣고 격정에 휩싸여 동료들과 포옹하는 모습을 두고 최근 영국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한 이 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나왔다. 코로나19의 기세를 꺾기 위해 전 세계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총력을 기울이며 포옹은 물론이고 악수조차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는데, TV 중계로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화면 속에서 선수들이 거리낌 없이 포옹하고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최근 선수들의 코로나19 방역수칙을 한층 강화하면서 골 세리머니 때 포옹을 금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새 규정이 발표되자마자 즉각 논란이 일었다. 영국 공영방송 BBC를 비롯해 많은 매체가 이 논란들을 다루었다. 프리미어리그 구단 맨체스터 시티의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때때로 뇌는 무의식 상태에 빠진다”며 선수들을 옹호했다. 선수들의 포옹은 자신이나 동료가 골을 넣는 그 순간, 그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지 생각 끝에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본능에 가깝고 감정이 극대화되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막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한편으로는 코로나19로 억눌리며 포옹조차 못하는 사람들에게 선수들이 대리만족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새 규정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선수들의 책임을 강조한다. 국민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려 애쓰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이가 지켜보고 있는 경기에 나선 선수들이 이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많은 팬을 지닌 선수들이 앞장서서 실천할 경우 그만큼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필요성을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전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별것 아니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국내 프로축구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경기 중 포옹 자제 방침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을 통해 포옹 등 선수들의 과도한 골 세리머니를 자제해 줄 것을 구단들에 요청했다. 연맹은 이를 위반한 사례들을 모아 구단에 통보했다. 이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강제사항은 아니었지만 연맹은 위반 사례가 계속될 경우 구단에 벌금을 물릴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연맹 관계자는 “일종의 본능 같은 행동이어서 이를 자제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새 규정 발표 이후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선수들의 가벼운 포옹이나 신체 접촉을 볼 수 있다.

선수들의 포옹을 갑자기 막기 어려운 이면에는 포옹이 기쁨을 표현하는 본능에 가까운 행위라는 것도 있지만, 오랫동안 학습되어 몸에 배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히는 스포츠맨십의 중요 요소는 팀플레이에 있어서의 동료에 대한 협조, 그리고 우애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의 가장 뚜렷한 특징을 들자면 외부적으로는 경쟁, 내부적으로는 협동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페어플레이’라는 공정성으로 엮일 때 스포츠의 덕목은 빛난다. 상대를 품어 안는 포옹이야말로 이 협동과 우애의 정신이 가장 극적이고 명료하게 드러나는 행위로 인식돼 왔다. 갑자기 이를 “뇌가 없는 행동”이라고까지 몰아붙인 것은 너무 극단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보여주는 점은 분명하다. 같은 행동이라도 사회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점차 선수들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포옹 대신 허공에 악수하기 등 새로운 골 세리머니들이 등장하고 있다. 다만 이런 변화의 흐름들이 개인의 고립화를 가속시키는 쪽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세리머니 논란이 기쁨도 슬픔도 함께 끌어안고 나누는 대신 기쁨도 홀로, 슬픔도 홀로 치러야 하는 코로나19 시대 개인의 고독을 강화하고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경기장 안팎에서 개인 간의 연대와 우애를 확인하는 새로운 세리머니와 소통의 방식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
#포옹#금지#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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