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챙기고 여성 인권 외면한 여성계 거물들[오늘과 내일/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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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으로 박 시장 편드는 ‘여성계 대모’들
서울시장 후보 박영선 우상호 입장은 뭔가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모든 ‘미투’가 힘들지만 더 힘든 미투도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상대로 성폭력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김지은 씨는 “그가 가진 지위와 그가 관계 맺은 수많은 이에게 맞서는 일”이라고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고소인을 막아선 상대는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남성들이 아니라 그런 남성들을 닦달한 덕에 ‘여성계 대모’ 소리 들으며 한자리씩 차지한 거물들이다.

박 전 시장의 피해자는 지난해 7월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고소 계획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 지 하루 만에 여성계 인사들의 릴레이 전화 통화 끝에 서울시 젠더특보를 통해 그 사실이 박 전 시장 귀에 들어갔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시장 피소 사실 유출의 중심인물은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대표와 이 단체 대표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최고위원이다. 3선의 남 위원은 여당 여성 의원들의 단톡방에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 여성’으로 부르자고 제안한 사람이고, 이에 동조한 4선 의원 김상희 국회부의장은 여연 회원 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출신이다. ‘피해 호소인’이라 표현한 보도자료를 냈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성폭력상담소 초대 소장인 최영애 씨다.

검찰 발표 직후 벌어진 김영순 대표의 ‘정부 위촉직 줄사퇴’ 소동을 보면 여성계 인사들이 왜 가해자 쪽과 한 몸처럼 움직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 국무총리 소속 양성평등위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이사, 대법원 양형위 자문위원, 서울시 성평등위원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 ‘박원순계’ 남 위원의 보좌관은 3급 서울시장 젠더특보를, 최 위원장은 박 전 시장 덕에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지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자리에도 여연 출신이 앉아 있다. “얽히고설킴이 만들어낸 이익 공동체가 신념의 공동체를 능가하는 무서운 결속력을 발휘했다”는 것이 유창선 시사평론가의 진단이다.

여연의 출발점은 성폭력 반대 운동이었다. 1986년 부천 성고문 사태 대책위를 모태로 20여 개 단체가 연합해 1987년 출범했다. 김영순 대표가 여성운동에 뛰어든 계기도 운동권 내부에서 발생한 성폭력이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피해자는 운동을 그만두고 가해자는 학생회 간부로 당선됐다. 용서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런 분노와 정의감, 박 전 시장 같은 깬 남성들의 조력 덕분에 성폭력특별법을 포함한 여성인권 3법이 제정됐고 여연도 민변 참여연대와 함께 진보 정권의 3대 실세 단체로 클 수 있었다. 한명숙 초대 여성부 장관을 포함해 여연이 배출한 장관과 국회의원이 11명, 자리 기준으로는 14명이다. 2006년엔 60억 원짜리 빌딩을 지으면서 정부 고위 인사를 대거 참여시켜 시민단체답지 않다는 비판도 받았다. 여연 대표를 지낸 인사는 “여성 관련법 제정을 위해 정계 진출이 필요했지만 권력과 적당한 거리 두기에 실패해 여성운동 단체의 고유 목적을 유지하지 못한 면이 있다”고 했다.

유력 정치인을 상대로 한 미투는 여성 운동의 성과물이다. 그런데 권력의 부당한 폭력에 참지 말고 상담소를 찾으라고 독려하던 이들이 미투가 자기네 편을 향하자 “유출한 게 아니라 질문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여성운동 경력으로 쥐게 된 한 줌 권력을 지키자고 평생 소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대모들은 운동의 출발점을 떠올려 보라. 여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거론되는 박영선 장관과 우상호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부터 해야 할 것이다. 미투가 누구를 향한 외침이었든 피해자가 일상을 찾는 것으로 결말이 나야 한다. 그것을 위해 박 전 시장도, 여성계 대모들도 젊은 시절 치열하게 살아온 것 아닌가.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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