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겉으로는 대화하자면서 힘으로 공수처법 밀어붙이는 與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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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이번 정기국회에서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드디어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며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들의 권한을 분산하고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개혁 입법이 반드시 통과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인 내일까지 강행 처리를 예고한 공수처법 개정안 등 쟁점법안의 국회 통과를 독려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 개혁을 ‘남은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로 거론하면서 취임사에서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되새기듯 강조했다. 하지만 여권의 구상대로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으로 공수처법이 개정된다면 문 대통령의 말과는 정반대로 공수처가 정권에 철저히 예속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 분명하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검찰과 경찰로부터 중복 수사하는 사건을 이첩받는 등 사실상 검경의 상위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우리 헌정사에 일찍이 없었던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셈이다. 여권이 낙점한 공수처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적당한 견제장치가 없으면 살아 있는 권력을 감시한다는 당초 취지는 온데간데없어질 것이다. 여당은 공수처법을 처음 통과시킬 때 야당에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이 있다는 것을 법 통과의 핵심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공수처장 인선에 장애물이 된다는 이유로 야당 비토권을 없애겠다는 것은 명백한 자기부정이다.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야당이 반대해도 정기국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등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을 가졌다고 해서 명분도 없고 부작용이 뻔히 예상되는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는 것은 책임 있는 집권여당의 태도가 아니다. 대화를 하겠다면서 모든 쟁점법안을 원하는 대로 통과시키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겉으로는 대화 시늉을 하며 명분을 축적한 뒤 힘으로 강행 처리하겠다는 꼼수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수처법과 기업규제 3법은 형사사법 체계와 경제시스템의 근간을 바꾸는 중대 법안들이다. 일방적인 강행 처리 후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임대차 2법’의 재판(再版)이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야당과 진지한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권력기관 개혁#공수처#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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