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 ‘만세’ 대신 ‘천세’를 원하나[오늘과 내일/고기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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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외교 “한국은 독립국”, 日이 조선에 했던 말
우리를 美에서 떼어 내려는데도 與는 옹호

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지난달 방한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쏟아낸 언사 중 목에 걸린 가시 같았던 게 “한국은 독립 자주 국가다”라는 발언이었다. “세계에 미국만 있는 건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중에 나왔다. 독립 자주 국가…, 당연한 말 같지만 한때는 조선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던 열강들이 내건 치욕의 명분이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서 청을 몰아낼 때, 이토 히로부미가 이홍장을 불러 체결한 시모노세키 조약의 제1조가 ‘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 독립국임을 확인하며…’였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뿌리째 들어냈다. 독립국이라는 당위를 강요하는 주체는 다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행간의 논리와 의도는 동일하다. 일본과 청이 중국과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중국은 제국을 경영해본 나라이고, 중국인은 사람을 부려본 민족이라고들 한다. 저우언라이가 1954년 발표한 외교 정책인 ‘평화공존 5원칙’의 타국 내정 불간섭주의는 적어도 대(對)한반도 접근에서는 사문화됐다. 사드 사태 때 중국에 속절없이 당하며 확인한 대로다. 한 번이라도 제국을 영위했던 나라는 자국의 힘을 해외에 투사했던 과거의 역사에 중독돼 있기 마련이다. 중국이 주변국에 근육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 것도 이런 관성이 작용하고 있어서다. 6·25전쟁 참전을 침략과 분단의 역사가 아닌 미국을 상대로 동북아 패권을 겨뤘던 성공의 역사로 윤색해 버리는 나라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했다는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은 전달자의 과장이나 오역이 아닐 것이다. 이 때문에 왕이 부장 방한 때 보여줬던 여권 일각의 반응은 시대 퇴행적이라 더 우려스럽다.

왕이 부장의 발언에 여당 핵심 인사는 “중국에 줄을 서라는 의미보다는 다자주의의 질서, 국제질서를 강조한 것 아닐까 해석한다”고 두둔했다. “일부 언론과 야당이 ‘과공비례’ ‘전부 (중국에) 줄 선 것 아니냐’는 프레임을 걸어온 게 아쉬웠다”면서 말이다. 왕이 부장에게 과도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의 의전을 한 게 잘못된 건 아니다. 영향력 있는 외교사절에게는 할 수만 있다면 더 잘해 주는 게 맞다. 문제는 중국이 말하는 다자주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중국의 다자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외교전략이었고, 지금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해 있는 나라들을 중국의 자기장 안에 포획하기 위한 책략이다. 한국더러 굳이 자주 독립 국가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다자주의를 여과 없이 옹호하는 걸 보면 과거 반미를 외쳤던 사람들이 ‘모택동 전집’을 보며 정서적 유대를 느끼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진보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미국과 마찰하며 중국에 구애하는 게 단지 북한 이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 다자주의가 필요하다면 그건 동아시아 맹주로 군림하려는 중국의 패권적 행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당사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3·1운동 때의 ‘대한독립 만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대한제국 수립 전까지 조선은 만세(萬歲)를 연호할 수 없었다. 황제국이 아닌 제후국은 ‘천세(千歲)’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게 중국 중심 세계관이다. 중화와 이민족을 나누고 차별하며 군림하는 화이지변(華夷之辨)의 역사관은 모양을 달리한 채 끊임없이 부활해 왔다. 한국을 독립국이라고 굳이 확인해주는 왕이 부장의 언사와 중국식 다자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불편한 건 이런 연유에서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방한#왕이#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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